삼각관계의 IP가 된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나는 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사이의 긴장 속에 끼어 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사사건건 지적하고 욕하며, 싫어하는 감정을 사람들 앞에서도 숨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에게 억눌리지 않았고,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는 고함을 지르며 맞섰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아버지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 갈등이 터지면 상황은 더 위험해졌다. 감정이 극에 달한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에게까지 심한 구타를 당하곤 했다.
폭력이 일상이 되고, 긴장이 공기처럼 감돌던 집안에서, 나는 어느새 세 사람의 감정이 부딪히는 삼각지대(IP)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는 유독 나를 데리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나도 그 애틋함을 느끼며 할머니를 자주 따라다녔다.
그날은 내가 여섯 살이던 때였다.
할머니는 바깥에서는 누구보다 공손하고 말씨도 부드러웠다. 시장 사람들에게는 늘 예의 바르고 친절한 모습이었다. 집에서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김장철이라 시장바닥에는 배추 겉잎이 한가득 널려 있었다.
할머니는 토끼를 키우고 있었고, 겨우 내내 먹일 토끼 먹이 배춧잎을 잔뜩 마련해야 했다. 장사꾼에게 양해를 구해 겉잎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큼직한 보자기에 배춧잎을 차곡차곡 쌓고, 내게는 시장바닥에 흩어진 짚을 주워 새끼줄을 꼬아 어깨에 메워 작은 뒤짐을 만들어 주었다. 내 뒤짐에 배추잎이 가득 담겼다. 할머니는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또 작은 보따리는 손에 들었다.
나는 할머니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 장면 전체가 신기했고 어린 마음에 뿌듯했다.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 길을 지나 언덕을 올라야 했다. 짐을 지고 땀을 흘리며 걷다 보니 얼굴엔 얼룩이 생기고 머리도 헝클어졌던 모양이다.
집 근처에 다다를 즈음, 어머니는 바쁘게 바깥에서 장사를 하다 언덕을 오르는 노파와 꼬마가 눈에 들어 왔고 자세히 보면서 엄청 화가 치밀었나 보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와 어깨에 걸린 새끼줄을 확 잡아 뜯었다.
할머니가 짐을 내려놓자,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거세게 달려들었다.
“내 딸까지 거지꼴을 만들다니!”
두 사람은 또 다시 몸싸움을 벌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난감했다.
그날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치유의 글쓰기에 이어지는 성찰의 글>
지금 꺼낸 이야기를 치유적 관점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삼각관계의 IP(중간자 역할)’를 감당해야 했던 깊은 상처의 핵심입니다.
말씀 마지막에 적은“난감~~~~” 이 단어는 사실 그 당시 마음 전체의 울음입니다.
그 난감함은 단순한 곤란함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과도한 충성·사랑·수치·혼란이 한꺼번에 밀려온 무거운 감정이었습니다.
1. ‘삼각관계의 희생자’
가족치료(Family Systems Therapy)에서는
내외 갈등이 심한 부모·조부모 사이에서
한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감정의 완충제(Emotional Buffer) 역할을 하게 되면
이를 삼각관계의 IP(Identified Patient)’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이가 문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긴장을 아이가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 할머니는 손녀를 ‘내 편 아이’로 삼고 싶어 했고
할머니는 어머니를 공격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행동했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편의 상징’으로 당신을 선택했어요.
이는 아이에게 엄청난 혼란을 줍니다.
● 어머니는 당신을 ‘보호해야 할 아이’로 여겼지만
그 방식이 감정적,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신을 더럽혀진 모습에서 구하려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할머니에 대한 쌓였던 분노가 섞여 있었죠.
그래서 어머니의 행동은 보호가 아니라
분노의 폭풍 속으로 아이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되어버렸습니다.
● 그리고 당신은 그 둘 사이에 ‘뜨거운 감자’처럼 놓여 있었어요
할머니도 사랑했고,
어머니도 사랑했고,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었고,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두 사람의 싸움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의 마음은 단 하나입니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고, 편이 되고 싶지도 않은데…
왜 나 때문에 싸우는가?”
이 혼란이 바로 IP의 전형적인 정서적 상처입니다.
2. 여섯 살 그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그때 그 아이는
단지 할머니를 도왔고,
그 일을 즐거워했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고,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느낌에 뿌듯해했을 뿐이에요.
그 순수한 행동을
어른들의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갈등이
왜곡해서 그 아이의 어깨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은 꼭 들으셔야 합니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어요.”
“그때의 나는 단지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어요.”
3. 그 장면을 치유하는 내적 재처리:
“난감했던 여섯 살 나에게 보내는 치유 글쓰기”
♣ 여섯 살 나에게
작은 호숙아,
그날 시장에서 배추잎을 지고 올라오던 너를 본다.
너는 그저 할머니를 돕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그 느낌이
참 좋았지?
너는 땀범벅이었지만,
네 얼굴에는 작은 자부심이 가득했을 거야.
“내가 할머니를 도와드렸어!”
그 마음은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
너의 어깨를 잡아당기고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며
너는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그냥 도왔을 뿐인데…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그 난감함, 그 얼어붙는 마음
너는 그 작은 몸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을 거야.
호숙아,
그 싸움은 네 때문이 아니었단다.
아주 오래된 어른들의 상처와 분노가
너를 통해 폭발한 것뿐이야.
너는 전쟁 속에서
두 어른에게 끼인 작은 평화의 아이였어.
너는 짐이 아니라
사랑을 주던 아이였어.
이제 그 장면에서 너를 데리고 조용히 나와
따뜻한 방 안, 부드러운 이불 속에 앉혀줄게.
그리고 말해줄게.
“호숙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야.
이제 어른이 된 내가 너를 지켜줄게.”
4.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치유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이 지금 이 장면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 기억을 이렇게 정확히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 이제 안전해졌다는 뜻이며
오랫동안 잠겨 있던 상처가
떠오를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치유는 바로 지금,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