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ChatGPT가 좋아요, Claude가 좋아요, 아니면 Gemini?”
지난주에만 이 질문을 다섯 번 받았다. 커피 한잔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언제나 비슷하다. “Gemini는 구글 검색 데이터가 연동돼서 최신 정보를 잘 안다더라”, “GPT는 대화 기억력이 좋다던데”, “Claude는 글쓰기를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어디선가 들은 특징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디에 쓰실건가요?”
내가 되묻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 그냥...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다들 쓴다고 하니까.” 호기심 가득했던 대화가 조금씩 맥이 빠진다.
얼마 전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난기류로 흔들리는 야간 비행 중 창밖으로 번개가 치는 걸 보였다. 나는 내 갤럭시 S22를 꺼내 비행기 창틀안에 넣어놓고 셔터스피드를 10초, 30초로 해가며 여러 번 시도 끝에 그 순간을 담았다. 유튜브에서 찾아본 ‘비행기에서 밤 하늘 잘 찍는 방법’에서 본 방법이었다. S22는 요즘 핸드폰에 비하면 카메라가 많이 부족했을 거고, 아마 최신 폰이었으면 조금은 더 잘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비교와 평가의 달인이다.
대학 입시철이면 전국의 부모들이 입시 전문가가 된다. SKY 각 학과의 커트라인, 정시와 수시 전형의 차이, 교과와 종합의 유불리까지. 카페와 커뮤니티는 숫자와 전략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아이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대화는 뜸하다.
노트북 하나를 사려해도 다나와를 켜서 CPU 벤치마크 점수, 그래픽 카드 성능, 발열 지수, 무게 대비 배터리 효율까지. 스프레드시트처럼 정리된 스펙을 비교하고, 유튜브 리뷰를 정주행한다. 커뮤니티의 사용기까지 섭렵하고 나면 누구나 제품 전문가가 된 기분으로 구매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막상 산 노트북으로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간단한 문서 작업이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업 시즌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연봉 순위, 워라밸 지수, 복지 포인트를 꼼꼼히 비교한다. 하지만 “내가 그 회사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자기소개서 작성할 때나 겨우 떠올린다.
우리는 도구의 성능표는 외우지만, 그 도구로 쓸 자신만의 이야기는 준비하지 않는다. 마치 최고급 만년필을 사 모으면서도 정작 쓸 편지는 없는 수집가처럼.
학벌을 평가할 때의 날카로움, 연봉을 비교할 때의 정밀함, 브랜드를 논할 때의 해박함. 그 에너지의 10분의 1만이라도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쏟는다면 어떨까.
우리는 왜 이렇게 더 좋은 도구에 집착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목적지를 정하는 것보다 차를 고르는 게 쉽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는 실존적 질문이지만, “무엇을 탈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전자는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지만, 후자는 카탈로그를 비교하면 된다.
더 빠른 프로세서, 더 선명한 카메라, 더 가벼운 탄소 프레임. 이런 개선은 숫자로 명확하게 표현된다. 반면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는 측정할 수 없다.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한국 사회의 경쟁 문화가 이를 더 부추긴다. 옆 사람이 최신형 아이폰을 들면 나도 그 정도는 돼야 한다. 동료가 새 골프채를 장만하면 나도 업그레이드를 고민한다. 도구의 수준이 곧 나의 수준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비슷한 도구를 갖추면 갖출수록 정작 차별화되는 건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다.
우리는 무엇을 할지를 정확히 결정하고, 그리고 나서 거기에 맞는 도구를 구하여 내 주변 환경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그저 다른 사람들이 앞서나가는 것 같으면 FOMO에 빠져서 나도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 끝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레밍즈들 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짜 어려운 건 좋은 도구를 고르는 게 아니라, 그 도구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계속 스펙 비교라는 안전지대에 머물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AI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오늘 최고라고 평가받는 AI 모델이 내일은 구식이 된다. ChatGPT가 세상을 놀라게 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Claude가 등장했고, Gemini가 뒤를 이었다. 각 모델의 장단점을 정리한 비교표는 분기마다 업데이트되고, 우리가 외운 스펙은 금세 무의미해진다.
이런 속도전 앞에서 우리의 오래된 습관 - 최고의 도구를 찾아 비교하고 선택하는 - 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AI는 우리가 신중하게 고민하는 사이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변화가 하나 더 있다. AI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코딩을 몰라도 앱을 만들 수 있고,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아도 그럴듯한 포스터를 제작할 수 있다. 작곡 이론을 몰라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기술적 장벽이 낮아지면서 정작 중요해진 건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도구를 쓸 수 있을 때, 차이를 만드는 건 도구가 아니라 기획과 설계와 철학이다. 모두가 AI라는 강력한 조수를 곁에 둔 지금, 승부는 “누가 더 좋은 AI를 쓰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의미 있는 문제를 푸는가”에서 갈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답은 명확하다. 오늘의 AI보다 내일의 AI가 더 뛰어날 것이 확실하다면, 정작 중요한 건 “지금 나는 AI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다. 오늘 서툴게라도 AI로 글을 쓰고, 코드를 짜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사람은 내일 더 강력해진 AI와 함께 더 놀라운 일을 해낼 것이다.
“Claude가 코딩을 더 잘한대” 대신 “오늘 Claude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봤어” “GPT-5가 나오면 시작할게” 대신 “GPT-4로 지금 내 업무를 개선하고 있어”
“어떤 AI가 최고야?” 대신 “나는 AI로 이런 걸 하고 있어” 이런 말들을 더 듣고 싶다.
도구의 주인이 될 것인가, 스펙의 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은 도구를 사용해 무언가를 창조한다. 노예는 더 좋은 도구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주인은 불완전한 도구로도 가치를 만들어낸다. 노예는 완벽한 도구 앞에서도 무엇을 할지 모른다.
결국 AI 시대의 진짜 생존법은 비교와 선택이 아니라 시도와 창조다. 완벽한 도구를 기다리는 동안, 불완전한 도구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비행기 창밖으로 번개가 치던 그날 밤을 다시 떠올린다.
난기류에 흔들리는 기체, 캄캄한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섬광. 내가 꺼낼 수 있는 촬영장비는 갤럭시 S22뿐이었다. 요즘 카메라에 비하면 떨어지는 카메라 성능일 테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번개가 하늘을 가르는 순간을 담았다.
그 사진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최신 아이폰이었다면 아무래도 더 잘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 의지였고, 거기서 0에서 1이 생겼다는 것을, 카메라 스펙은 결국 0.8~1.2 사이의 미세 조정만 하는 것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서 내가 카메라를 꺼내겠다고 생각한 것이라는 걸.
AI 시대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떤 AI가 가장 뛰어난가”가 아니다. “나는 AI와 함께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다.
목적이 도구를 정의한다. 번개를 찍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카메라가 의미를 갖듯, 창조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야 AI도 진정한 도구가 된다.
장비병은 불안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무엇을 할지 모르는 불안을 ‘아직 도구가 충분하지 않아서’라고 위안하는. 하지만 AI 시대는 더 이상 그런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구는 이미 충분하고, 매일 더 강력해진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스펙 비교표를 닫고 빈 캔버스를 열 것인가. “어떤 AI가 최고인가”를 묻는 대신 “오늘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물을 것인가.
장비병 민족이라는 오명을 벗고 혁신의 민족이 될 것인가.
답은 각자가 찾아야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일의 AI는 오늘보다 강력할 것이고, 오늘 시작한 사람만이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릴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