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霖雨) 2

by 몽중몽

*


마구간 안은 눅눅한 흙냄새와 말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 한낮임에도 어둑했다.

영회는 자신의 말을 살피며 안장을 손끝으로 쓸었다.

평소의 갑옷도 비단 두루마기도 아닌, 무명으로 된 편한 옷차림이었다.

“흠…….”

영회가 안장을 점검하는 동안, 마구간 입구에는 하인 한 명이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말을 향했다가 곧 영회의 등으로 옮겨가며 불안하게 흔들렸고 땀에 젖은 손바닥을 연거푸 옷에 문질러 닦았다.

“어머님께 약을 올렸느냐?”

영회가 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그……그렇습니다. 도련님.”

하인이 서둘러 답하였다.

“그리고……안채의 시녀들이 전하기를…….”

하인이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그제야 영회가 몸을 돌려 하인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조금 날카로웠다. 그 눈빛에 흠칫하면서도 하인은 계속 말하였다.

“마님께서……큰 도련님이 더 자주 문안드리기를 바라신답니다.”

영회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그분이 진정 걱정하시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러나 곧 표정이 굳어지더니 단호하게 꾸짖었다.

“아랫사람들이 집안일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거라.”

“죄송합니다!”

하인은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

영회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자, 하인은 일어나 말고삐를 꼭 쥔 채 그 뒤를 따랐다.

주종(主從)은 아무 말 없이 대문까지 걸어갔다. 마당에는 빗방울이 아직 고여 있어 발걸음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대문 밖으로 나온 영회는 능숙하게 말에 올라탔다.

“교외까지 가자.”

“알겠습니다.”

말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린 구름 사이로 아직 햇살이 나오지 않았다.

말발굽 소리가 젖은 흙길에 둔탁하게 울렸다. 영회는 교외로 나가면 혼자 말을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너무 심란했다. 이 답답함을 어디선가 풀어야 했다.

말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후계 자리에 욕심이 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서운함이 컸다. 자신이 그동안 집안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는 결국 친 혈육을 택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둘째와 다르다.’

영회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마음도—’

히히힝―!

말이 갑자기 울부짖었다.

영회가 생각에서 깨어나는 순간, 말고삐를 쥔 하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뭣?!”

다음 순간 말이 격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어?! ”

황급히 몸을 가누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말이 앞발을 높이 치켜들자 영회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필사적으로 말갈기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이 미끄러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땅과 하늘이 뒤집히며 눈앞이 아찔하게 요동쳤다.

몸이 말등에서 떨어져 나갔다. 젖은 흙바닥이 빠르게 다가왔다.

묵직한 충격음.

영회의 의식이 끊어졌다.


*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으나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무더운 오후였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공기 속에서도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영유 일행이 역참(驛站)* 마당에 발걸음을 들이자, 관리들이 분주히 달려 나왔다.

“도련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구부린 허리와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에서 공손함이 느껴졌다. 영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정성을 받아들였다.

관리도 아닌데 역(驛)을 사용하네. 낙리는 담담하게 생각하며 영유의 뒤를 따랐다.



겉으로는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영유의 눈빛은 마당 저쪽으로 자꾸 흘렀다.

“리야.”

영유가 뒤돌아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말들 구경하고 싶지 않아?”

영유 자신이 마구간을 보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낙리는 그 눈빛을 읽고 피곤한 몸을 잠시 움찔했으나, 금세 상냥하게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요. 어떤 말들이 있는지.”

“그럼 같이 보러 가자!”

영유는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발을 옮겼다.

낙리는 작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마구간에는 여러 필의 말들이 여물을 먹거나 쉬고 있었다. 영유는 한 마리씩 살펴보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 비슷비슷하다. 큰형이 타고 다니는 말처럼 좋은 말은 거의 없는 것 같네.”

“군마와는 다르지요. 전쟁에 쓰이는 말들은 눈빛부터 다르다더군요.”

낙리가 간단히 맞장구쳤다. 그는 영유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어린애였는데……애들은 참 빨리 크는구나.’

그때였다.

“도련님!”

추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역참 관리 한 명과 함께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영유가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일이지?”

추홍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이 났습니다! 큰 도련님께 변이…….”

영유는 눈을 크게 뜨며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굳혔다.

“큰 형에게? 무슨 일이야!?”

낙리도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이렇게 빨리?’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숨결을 짓눌렀다.

무언가 눈치채기라도 한 듯 마구간의 말들이 발굽을 구르며 불안한 기척을 퍼뜨렸다.


*


추홍이 먼저 말을 달려 떠난 뒤, 영유와 낙리는 마차에 올랐다.

“빨리, 빨리 가야 해!”

영유의 재촉 소리에 마부는 채찍을 휘둘렀다. 중간에 쉬지도 않고 말만 바꿔가며 달려왔다. 바퀴가 돌 위를 굴러갈 때마다 요란한 소음이 났지만, 영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낙마라니……괜찮을까?”

영유는 창 너머로 흙먼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큰형은 전장에서도 무사했던 사람이야. 분명 괜찮을 거야. 그럴 거야…….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낙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어조로 소년을 달랬다.

“예, 분명 무사하실 겁니다. 큰 공자께서야 워낙 강건하시니까요.”

그러나 속으로는 차갑게 생각했다. ‘그 사람’이 작정하고 일을 꾸몄다면, 무사할 리가 없겠지……. 사고라고 했지만, 사고가 아닐 것이다.



해가 저물 무렵, 마차는 드디어 승상저 앞에 도착했다. 영유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 동작이 멈췄다.

저택 대문의 하얀 종이에는 ‘忌中’이라 검은 붓글씨가 선명히 적혀 있었고, 대문 위로 조등(弔燈)이 바람에 흔들리며 쓸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아—!”

영유가 비명을 질렀다. 다리에서 힘이 빠져 마차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낙리가 재빨리 받쳐 주었다.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낙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입술을 꽉 깨물어 표정을 관리했으나, 목구멍이 바짝 말라 침을 삼키기조차 힘들었다.

영유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빈소로 향했다. 그의 등이 떨리고 있었다.

낙리는 빈소 밖에서 기다리며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해, 정말 이상하다고…….”

하인들과 노비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사고가 아니래.”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말이 날뛰다 그냥 죽었다잖아. 제풀에. 그게 정상이겠어? 분명 뭔가…….”

“말고삐 잡던 하인은 어디 갔대?”

“달아났다더라. 흔적도 없이.”

“그런데 있잖아…….”

다른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그게……그 도망간 녀석이 누구 사람이었는지 알아?”

“입 조심해!”

주변 사람들이 황급히 그를 제지하며 낙리 쪽을 힐끔거렸다.

낙리는 못 들은 척했다. 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둘째 공자가 뒤집어쓰게 되겠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안에서는 여전히 곡소리가 들려왔다.

“저…….”

낙리가 지나가는 하녀 한 명을 정중히 불러 세웠다.

“도련님이 빈소에서 나오시면 방으로 가실 텐데, 진정하실 수 있도록 따뜻한 차를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방 안은 너무 어둡지 않게, 촛불을 좀 밝혀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하녀가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영유가 빈소에서 나왔다. 소년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고 있었다.

“리야, 내 방으로 가자.”

“예, 도련님.”

방으로 가는 영유의 발끝이 자꾸 멈칫거렸다. 그때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유가 입술을 다물었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추 장사가……형님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어.”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말도 안 돼. 누가 형님을…….”

낙리는 놀란 척 눈을 크게 뜨며 낮게 중얼거렸다.

“설마, 그런 일이….”

“아버님도, 마님도 격노하셔서…….”

영유가 말끝을 흐렸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집안이 온통 뒤집혔어.”

영유는 낙리를 보며 말했다.

“너도 조심해. 이런 때일수록 괜한 말이나 행동 삼가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낙리는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는 침착한 얼굴이었으나,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풀어졌다.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불현듯 염온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만간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지금 이 상황에서, 왜 염온인가.

‘……많이 무서운 거구나.’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이 정도로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낙리는 떨림을 억누르며 영유의 방문을 열어주었다.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낙리는 더 이상 떨리는 몸을 막을 수 없었다.

벽에 기댄 채 몸을 웅크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기억은 어둠 속에서 더 선명했다.

그날은 삭월(朔月)이었다.

영회의 인사이동이 좌절된 날, 낙빈이 영회를 요릿집으로 불러들였다.


*

낙리는 처마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네가 안 되어 하는 말이지…….”

사창(紗窓) 너머로 낙빈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낙리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 유라고 했나, 막내아들의 일도 그렇고…….”

“그 일은 아랫사람들이…….”

“알지.”

낙리는 숨을 죽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낙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조금 더 선명했다.

“하지만, 당시에 승상대인의 곁을 지켰던 자네는 알고 있지 않나? 그분은 직접 말하지 않고도 사람을 움직이는 데 능한 분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명령하지야 않았겠지만, 결과를 짐작하지 못하셨겠나.”

낙리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대화가 들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좀 더 가까이 창가로 다가갔다. 옷자락이 나뭇가지를 스쳤다. 가슴이 철렁했다.

안에서 잠시 대화가 멈춘 듯했다. 그러나 곧 다시 이어졌다.

“잔인한 분이야. 자기 자식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분이라고.”

낙리는 숨을 참았다가 조심스럽게 내쉬며 다시 귀를 기울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참 이상하지 않나. 처음에 알려지기로는 추 장사가 배신했다고 했지. 그래서 저연과 그가 보호하던 막내 공자가 살해당했다고.”

“…….”

“그런데 나중에 반정(反正)으로 세상이 뒤집히고 나니 그 배신자가 두어 살 먹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나서는, 그때 죽은 건 가짜고 이 아이가 진짜 막내 공자라고 했다. 보통이라면 믿기 어렵지 않나?”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낙빈이 헛웃음을 쳤다.

“나라면 그 배신자의 목을 쳤을 걸세. 죽기 싫어 아무 말이나 지어낸 거라고 여기고. 하지만, 승상대인께서는 단번에 믿으셨지.”

낙리의 손이 떨렸다.

“그래……마치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긴 침묵이 흘렀다. 낙리는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아버님께서 두 사람을 되돌려 보내셨습니다. 유를 구하라고.”

영회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고 있었군…….”

“아버님 곁에 있었으니까요.”

영회의 대답은 간신히 들렸다.

“그때……저연이 말했습니다. 자기 집 노비에게 유와 같은 나이의 아기가 있다고.”

낙리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 아이를 쓸 테니……염려마시라고…….”

낙리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영회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낙리의 온몸이 떨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비린 맛이 입안에 번졌다.

“역시 그렇군.”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했습니다. 관군(官軍)이 닥쳐오고 있었고, 유는 강보에 싸인 아기였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낙리는 귀를 막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안에서는 여전히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낙리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귓속에서 심장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이었다.


*


낙리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창틈으로 바람이 스며들어와 벽의 족자를 흔들었다.

영회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돌았다.

‘그 아이를 쓸 테니……염려마시라고…….’

바람이 등을 스쳤다. 서늘했다.

낙리는 눈을 떴다. 이를 악물었다.

네가 방관했듯이……나도 방관한 것뿐이야.”

작게 중얼거렸다.

“네 아비가 내 가족을 죽였으니…….”

목소리가 갈라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도……이 집안을…….”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손의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주먹을 쥐었다.

마치 자신의 의지를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하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역참(驛站):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에 숙식을 제공하고, 귀빈을 접대하기 위하여 각 고을에 두던 객사(客舍).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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