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탕(探湯) 1

by 몽중몽
探湯 :
1. 끓는 물에 손을 넣어 본다는 뜻으로, 더위에 괴로워하는 모양이나, 고생하거나 두려워하여 경계하는 모양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름
2. '끓는 물에 손을 넣고 죄의 유무를 가리는 일'에서 유래하여,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판단. 위험하고 불공정한 상황.
3. 견불선여탐탕(見不善如探湯)서 비롯하여, (선하지 않은 일을 접하면) 끓는 물에 손이 닿았을 때처럼 빨리 벗어나야 함을 뜻함

*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가운데, 서재의 등불은 새벽바람에 일렁이며 방 안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상복을 입은 승상 부부가 앉아 있는 앞에, 영사는 흐트러진 평상복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우 부인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네가 형을 해쳤다는 말이 들려오더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으나, 칼날을 감춘 듯 날카로웠다.

“놀랐다기보다, 한심하구나. 형제 사이에 그런 말이 오르내린다는 것이.”

“마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결코…….”

“달아난 하인이 네게 매수된 자라 하더구나. 사실이냐?”

영 승상이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그것은…….”

영사가 머뭇거렸다.

“그 하인의 방에서 네게 받은 물건이 나왔다.”

승상의 말에 영사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단지 형님의 소식을 전해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런 일과는 무관합니다.”

“그런가.”

우 부인이 나직이 말을 받았다.

“무슨 목적으로 그리 관심을 가졌을까?”

“아닙니다!”

영사는 이를 악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 제가 형님의 목숨을 노리겠습니까? 아버님께서 저를 인정해 주셨는데,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우 부인은 그 말끝을 놓치지 않았다.

“상공께서 너를 인정해 주지 않으셨다면, 형을 해칠 생각이었단 말이냐?”

영사의 입술이 굳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번 일만큼은, 정말 아닙니다.”

“이번 일만큼은, 이라…….”

우 부인이 부드럽게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전에는 무슨 짓을 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방 안 공기가 가볍게 흔들렸다.

영사는 얼굴빛이 하얗게 질리며 손을 움켜쥐었다.

“사람이 한 번 품은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네가 예전에 동생을 다치게 하고 형을 모함하려 했을 때 이미 씨는 뿌려졌다. 지금 그 열매가 맺혔을 뿐이다.”

영사는 떨리는 손으로 옷깃을 붙들었다.

“제 말을 믿어 주십시오! 저는 아닙니다…….”

“믿음이란, 행실로 쌓는 것이다.”

우 부인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간의 너는, 스스로 믿을 자리를 깎아내렸지.”

승상이 부인의 손등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부인, 이만 하시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소.”

우 부인은 차게 웃었다.

“세인들의 입에 집안의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 걱정될 뿐입니다.”

승상이 영사를 향해 말했다.

“일단 너는……상복으로 갈아입고 빈소를 찾아라. 그리고 당분간은 네 거처에서 조용히 있거라.”

그때 바깥에서 추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 태사께서 조문을 오셨습니다.”

“태사께서 직접 오셨단 말인가?”

승상이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영사에게 말했다.

“어서 빈소로 나오너라.”

“네 형의 혼이 아직 집안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 부인이 시녀에게 부축을 받으며 덧붙여 말했다.

“형의 영전(靈前)에 서서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라.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다.”

승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들을 돌아보았다.

“이럴 때일수록 태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집안이 무너지면 우리 모두 끝이다.”

“아버님,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저는—”

영사가 애원했지만, 승상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오너라.”

문이 닫히자, 방 안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추홍이 안으로 들어왔다. 영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아버님도……나를 의심하신다. 왜, 왜 자식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냐…….”

“…….”

추홍이 조심스레 다가가 무릎 꿇은 영사를 일으켰다.

“어서 빈소로 가십시오. 조문을 하지 않으시면, 오히려 의심이 깊어집니다.”

영사는 추홍의 눈빛 속에서도 의심의 그림자를 읽었다.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창 틈으로 습한 바람이 비 냄새를 실어 왔고, 빗방울이 창호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땅이 비에 잠기듯, 마음 한구석까지 서서히 젖어들었다.

방 안에는 아직도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고 새벽어둠은 더욱 깊어만 갔다.


*


장막처럼 드리운 구름 아래, 빗줄기가 상장 위로 떨어졌다. 흰 천에 스며든 얼룩이 천천히 번졌다.

향로의 연기가 그 위를 감싸며 실내를 뿌옇게 메우고 있었다.

흰 옷자락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조정의 대신들, 승상가와 인연이 있는 관료들, 멀리서 달려온 친척들까지.

하지만 정작 상주인 승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상복을 입은 어린 소년 하나가 위패 앞에 서 있었다.

“막내공자이시지?”

“그런 것 같소. 그런데 승상께서는 어디 계신 것이오?”

영유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의연한 얼굴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조문객들은 예를 갖춰 인사했지만, 시선은 하나같이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은 승상을 찾고 있었다.

낙리는 빗물이 스며든 문설주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흰옷이 젖어 어깨에 달라붙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의 눈빛만 살피며 숨을 죽였다.



잠시 후, 영 승상이 빈소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이런 변을 당하시니……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천수를 누려야 할 공자가 이리 일찍 가시다니…….”

승상은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인사를 받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문간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소 태사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천천히 들어섰다.

승상은 조문객들 사이를 헤치고 나와 한층 정중한 모습으로 소 태사를 맞이했고 영유도 서둘러 다가와 깊이 절을 올렸다.

소 태사는 깊은 주름 사이로 안타까운 기색을 드러냈다.

“나도……자식을 먼저 보낸 사람이오.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애도가 담겨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겠지만, 이겨내야 합니다. 남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마르고 주름진 손이 조심스럽게 영 승상의 손을 감싸 쥐었다.

영 승상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또다시 문이 열리며 영사가 서둘러 들어왔다.

영사는 숨이 거칠었고, 의관이 흐트러져 있었다. 승상은 아들을 바라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늦었구나.”

그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거두어졌다.

“태사공께 인사를 드려라.”

영사는 황급히 소 태사의 앞으로 가서 절했다.

“그대도 상심이 크겠군.”

소 태사의 어조는 비단처럼 부드럽고도 매끄러웠다.

빈소 안 공기가 멈춘 듯했다.

이내 낮은 속삭임들이 스며들었다.

“뻔뻔하게.”

“고인이 눈을 감겠는가.”

“쉿!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수군거림은 비 냄새에 섞여 서늘하게 번졌다.



낙리는 소 태사의 태연한 얼굴을 바라보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그 소리가, 마치 무언가를 묻어버리려는 듯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


며칠이 흘렀으나 빈소의 향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저택 안에는 흰 상복 차림의 하인들이 오가며, 말소리조차 눌려 깔린 듯 낮게 울렸다.

아직 발인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승상저는 여전히 상중(喪中)의 무거운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낙리는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빈소의 광경이 떠올랐고, 소 태사의 태연한 얼굴과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귓가에 맴돌았다.



“리야.”

방을 나서는 낙리를 영유가 불렀다. 소년의 모습도 초췌했다. 눈가에는 여전히 피로와 두려움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억지로 태연한 빛을 띠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너, 의원에게 한번 가는 게 좋겠다.”

낙리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련님.”

“사실……나도 요즘 몸이 좋지 않아. 약을 함께 지어와 줄 수 있을까?”

영유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아버님께서 걱정하실까 봐……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거든.”

영유 역시 형의 죽음과 집안의 혼란 속에서 많이 지쳐 보였다.

낙리는 그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저택에서 벗어나 큰길로 접어들자, 그제야 낙리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치 오래 잠겨 있던 물속에서 막 고개를 든 듯.


*


의원은 낙리의 맥을 짚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많이 어지럽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고……이래서야 몸이 좋아질 리가 없지.”

……약을 지어주십시오.”

의원은 한숨을 쉬었다.

“약보다는 마음을 다스리는 게 먼저야. 하지만 일단 기를 돋우는 약을 지어주지.”

약봉지를 받아 들자 쓴 약재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이 냄새도 마음속 혼란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낙리는 자신과 영유의 약을 받아 들고 의원을 나섰다.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약봉지를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문득 염온의 얼굴이 떠올랐다.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 방향으로 향했다.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엇갈렸다.

서성이는 그의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낙 선생?”

돌아보자 염온이 종이우산을 접은 채 서 있었다.

“누님…….”

“얼굴이……많이 수척해지셨어요.”

염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낙리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가슴 한편이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염온 앞에서, 그는 마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괜찮습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것 같아요.”

“승상가의 일……밖에도 소문이 파다해요.”

염온의 말에 낙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 본 사람들이 많았나 봐요.”

두려움이 낙리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지만, 염온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낙 선생……괜찮으세요?”

낙리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염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랑비가 그들의 어깨를 적셨지만, 둘 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전에……혼담에 대해 말씀하신 것, 아직 유효합니까?”

“석이는……그렇게 생각해요.”

염온이 시선을 살짝 피하며 대답했다. 자신의 생각은 말하지 않았다.

“그전에 들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낙리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염온은 걸음을 늦추며 그를 바라보았다.

낙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충동적으로, 마치 오랫동안 갇혀 있던 것이 터져 나오듯 말을 시작했다.

“어떤……어떤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계속 이어졌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그 소년은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노비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줄 알았습니다.”

빗방울이 그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두 사람 모두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어쨌든 부모와 형제가 함께 있었고, 친구도 있었으니 그냥 만족하며 살았지요.”

낙리의 목소리에는 아련함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군사들이 찾아왔습니다. 주인이 죄를 지었다며, 집안사람들을 다 죽이러 온 것이었어요.”

염온이 걸음을 멈췄다. 낙리도 따라서 멈춰 섰다.

“가족 중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소년을 제외하면.”

낙리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주인 일가도 몰살당했고, 소년의 가족과 지인들도 다 죽었어요. 그러니 소년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남아 있지 않았지요. 소년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학문을 배우고, 예법을 익히며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도움으로요?”

염온이 처음으로 말을 끊으며 물었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낙리는 쓸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지요.”

어느새 두 사람은 강가에 도달해 있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로 물소리만이 들렸다. 낙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새로운 삶은 노비로서의 삶보다 편했지요. 잊을 만하면 악몽이 찾아왔지만요. 가족이 죽던 순간을 매번 다시 보는 악몽. 그래도…….”

그는 시선을 강물에 고정한 채 말했다.

“그래도, 그냥 이대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이었을 거예요.”

낙리가 고개를 돌려 염온을 바라보았다.

“……뻔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경멸하시나요?”

염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는…….”

곧 고개를 저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그녀는 낙리를 바라보았다.

“금상(今上)께서 즉위하시고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있었어요.”

낙리는 염온의 얼굴을 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불쑥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들을……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낙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많이 말해버렸다.

염온은 그저 조용히 낙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낙리는 다시 강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왜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시는 거예요?”

염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낙리가 잠시 염온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피했다.

“가족 간에 속이는 것이……두려웠어요.”

낙리가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는 말씀드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혼담을 거절하시면 되는 일이었잖아요.”

낙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거절하고 싶지……않았습니다.”

염온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다 멈췄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강물은 묵묵히 흘러가고 있었다.


*


염온은 잠시 눈길을 내리깔았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시간을……조금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낙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말은 없었다.

두 사람은 빗속에서 헤어졌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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