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탕(探湯) 2

by 몽중몽

*


낙리는 젖은 옷자락을 정리하며 승상저로 돌아왔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영유가 낙리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약은 구해왔어?”

“예, 도련님.”

낙리는 품에서 약포를 꺼내 건넸다.

영유는 그것을 받아 들고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구나. 오늘은 빈소 지키지 말고, 쉬어라. 나도 방에 들어가 좀 눈을 붙일 생각이야.”

영유의 목소리에도 깊은 피로가 배어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낙리는 책을 펼쳤으나 집중할 수 없었다.

문득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天網恢恢 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이지만, 놓치는 일이 없다.’

그 구절을 한참 바라보다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가.”

하늘은 눈감고 귀 막은 지 오래였다. 그것은 이미 예전에 알았다.

그는 책을 내려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이 가까워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얕은 잠에 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낙리는 몸을 일으켰다.

“도련님께서 부르십니다. 옷을 제대로 입고 나오시라 하셨어요.”

머리가 욱신거리고 속도 좋지 않았지만, 낙리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아버님께서 나가시는데 배웅하러 나가야 해.”

영유가 말했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대문 앞에 이르자, 영 승상이 자주색 관복을 갖추어 입고 서 있었다. 빗방울이 관복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낙리는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 발인도 마치지 않았는데 조정에 나가는 건가.’

영유와 영사가 앞으로 나서서 승상에게 인사했다.

“아버님, 잘 다녀오십시오.”

낙리를 비롯한 식객들과 하인들도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 조문객이 오시면 실례되지 않게 응대하거라.”

마차에 오르기 전 영 승상은 잠시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영유에게 머물렀다가, 영사에게로 옮겨갔다.

긴 시선이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그러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마차가 사라지자, 영사는 들어가려는 영유의 팔을 불쑥 붙잡았다.

“너도 나를 의심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영유의 목소리가 떨렸다.

“형님이……그럴 리가…….”

“거짓말 마라!”

영사가 팔을 더 세게 잡았다.

“너도 무언가 들었구나.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느냐?”

영사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영유는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입술만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낙리는 몸을 움직이려다 멈췄다.

추홍이 앞으로 나섰다.

“이러지 마십시오. 사람들 눈이 있습니다.”

추홍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이런 모습을 승상 대인께서 보시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영유는 그 틈을 타 황급히 몸을 빼내어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낙리도 따라갔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낙리는 표정 없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고 있었다.


*


새벽안개가 걷히기 시작할 무렵, 대궐 안은 이미 분주했다.

북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지며 자주색과 붉은색 관복을 입은 관리들이 하나둘 정전(正殿) 앞마당에 모여들었다. 각자의 소매 끝은 축축이 젖었으나, 누구도 내색하지 않고 정전에 들어 서열에 맞추어 섰다.

영 승상은 계단을 올라 정전으로 향했다. 발걸음마다 관료들의 시선이 스치듯 따랐고 작은 소곤거림이 일었다.

그러나 영 승상은 아예 귀를 막은 듯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전각문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이어갔다.

정전 안에 들어선 영 승상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하였다.

소 태사가 원로대신들의 자리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정중한 인사를 나누었다.

곁의 한 관료가 몸을 기울였다.

“폐하께서 친히 소 태사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명절에만 나오던 분을 왜 갑자기 부르셨는지…….”

그 말에 영 승상의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이내 가라앉았다.

북소리가 멈추고 전각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내전의 문이 열리고 황제가 옥좌를 향해 걸어 나왔다.

황제가 옥좌에 앉으면, 정전 안의 모든 신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신료들의 옷자락이 바닥에 스치며 물결쳤다.

사배(四拜)를 마친 신료들이 일어나 제자리에 서자, 황제의 시선이 승상에게 향했다. 황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황제는 차례로 보고를 받았다.

각 부(部)의 보고가 이어졌다. 평범한 안건들이었다.

승상은 시선 끝으로 소 태사를 훔쳐보았다.

소 태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회가 막바지에 이르자, 황제의 시선이 승상에게 향했다.

“승상.”

낮게 부르는 목소리에 정전 안이 고요해졌다.

“아들을 잃은 경의 슬픔에 짐 또한 애석하기 그지없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100일은 쉬어도 좋다고 했건만, 어찌 이리 서둘러 조정에 나왔는가?”

승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침착하게 답했다.

“신의 마음이 무겁사오나, 조정의 일은 늦출 수 없기에 감히 나왔나이다.”

침묵이 흘렀다.

이내 한 신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승상의 충정이 지극합니다.”

몇몇이 그 말에 동조했다.

“과연 국가의 기둥입니다.”

황제는 물끄러미 승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충성스럽구나.”

황제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승상은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시선을 흘렸다.

소 태사는 여전히 태연했다.

정전 밖의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조회는 이것으로 마친다.”

황제가 사라지고 다른 신료들이 하나둘 정전을 나가는 가운데, 소 태사도 천천히 자리를 떴다. 그는 승상과 스쳐 지나가며 시선을 나누었지만, 여전히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영 승상이 정전 밖으로 나서려 할 때, 내관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승상 대인, 폐하께서 편전으로 들라 하시옵니다.”

승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뒤로 빗소리만 따라왔다.


*


편전은 정전과 달리 고요하였으나 그만큼 더 압박감이 느껴졌다.

영 승상이 들어와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자, 황제는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승상, 그대의 작은아들……영 시랑(侍郞)*의 승진은 어렵겠네.”

승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상(喪)을 당했으니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울 터이고…….”

황제는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무엇보다……또 구설에 올랐다는 것이 문제로구나.”

승상은 일순 숨을 참았다.

“2년 전에도 구설수 때문에 사직을 하지 않았는가. 그때 경이 간청하기에 몇 달 만에 다시 형부(刑部)로 복직시켜 주었건만……이번에 또 이런 일이…….”

황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소문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 법이지. 불이 없는 곳에 연기가 나겠는가.”

“폐하…….”

“그러니 직을 내려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네.”

승상이 입을 열었다.

“폐하, 2년 전 일은 형제간의 불화에서 비롯된 뜬소문이었사옵니다.”

황제는 말이 없었다.

“이번 일 역시 큰 아들은 불행한 사고를 당했을 뿐입니다. 소문이 사실과 다름을 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승상의 목소리가 더욱 단호해졌다.

“폐하, 신이 자식에게 눈이 멀어 감히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다만 소문만으로 관리를 좌우한다면, 이는 신하들을 불안케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황제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러면, 경은 소문을 진화할 자신이 있는가?”

침묵이 흘렀다. 승상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하오나, 우려하시는 바를 신도 모르지 않사옵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차남은 상심이 클 터이니 잠시 물러나 쉬도록 하겠습니다.”

황제는 승상을 바라보았다.

“……좋다.”

한숨이 흘렀다.

“하지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황은에 감읍하옵니다.”

“물러가라.”

승상이 깊숙이 절을 올리고 뒷걸음질 쳤다.

편전의 문이 그의 앞에서 닫혔다. 승상은 굳게 다문 입술을 풀지 않은 채 복도를 걸어 나갔다.



황제는 옥좌에 기댔다.

“……물러서는 기색이 없군.”

그때 내관이 다가와 고했다.

“소 태사가 대령하였사옵니다.”

“들이라.”

곧 백발노인이 편전으로 들어와 절을 올렸다.

“노신이 폐하를 뵙습니다.”

“편히 있으시오. 오늘 오느라 수고했소.”

황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눈빛은 무언가를 가늠하고 있었다.

“폐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신하의 본분이옵니다.”

소 태사가 일어서자, 황제는 곧바로 말했다.

“승상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오.”

“본디 뜻을 굽히지 않는 성정이었지요.”

소 태사는 동의하며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오. 자기 파벌이나 친족들 일로 짐에게 맞선 것이 말이야.”

황제는 말끝을 흐렸다. 소 태사는 그 어조에서 불편함을 감지했다.

소 태사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군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하도 필요한 법이옵니다.”

황제의 손가락이 약간 움직였다.

“그리 생각하오?”

“다만……그 기세가 국정의 큰일에 쓰인다면 백성에게 이로울 터인데, 지금은 자식 일에만 쓰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황제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스쳤다.

“저런 기세로 자식을 감싸고 있으니……. 어떻게 보시오?”

“소 태사는 생각에 잠겼다가 신중하게 대답했다.

“승상은……현명한 사람입니다.”

“무슨 뜻이오?”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으나, 가문의 미래를 더 중히 여길 것입니다.”

소 태사는 한숨처럼 낮게 말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있다면……아마도 선택을 할 것입니다.”

황제가 눈썹을 치켜올리자 소 태사는 덧붙였다.

“승상에게 아들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황제는 생각에 잠겼고 소 태사는 조용히 기다렸다.

“영 중랑장은 아까운 인재였소.”

황제가 갑자기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승상의 아들이라는 것이 걸림돌이었지.”

그리고는 시선을 들어 태사를 바라보았다.

“영 중랑장이 가기로 했던 자리……누가 적합하겠소?”

소 태사는 곧장 답하지 않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변방이라지만 요직입니다. 아무나 앉힐 수는 없는 자리이옵니다.”

황제는 소 태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묻는 것이오.”

“불민(不敏)하온 신(臣)이……감히 경솔히 아뢸 수 없사옵니다.”

“그런가…….”

“폐하께서 적임자를 가려 주시면, 신은 그저 받들 뿐이옵니다.”

황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언은 구할 수 있겠지. 숙고해 보고 적당한 인물이 있으면 알려주오.”

“명을 받들겠나이다.”

“물러가도 좋소.”

소 태사는 깊이 절을 올렸다.

편전을 나서는 그의 걸음은 여전히 천천히, 신중했다.

문이 닫혔다.

황제는 홀로 남아 옥좌에 깊이 몸을 묻으며 낮게 웃었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


소 태사의 저택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소 태사가 마차에서 내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하인 한 명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위경께서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네.”

소 태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실로 향했다. 무거운 관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손에 매만지던 상아 홀(笏)**를 내려놓고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앉아 기다리고 있던 낙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했다.

“스승님.”

소 태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앉거라, 우선 차를 한잔 해야지.”

차가 우려지는 동안 정적이 흘렀다.

“……승상이 황상과 독대했다고 들었습니다.”

낙빈이 입을 열었다.

“그 후에 내가 황상을 배알했지.”

소 태사는 차를 따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승상이 황상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다.”

소 태사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번졌다.

“자식이 못난 것은 그 아비의 불행이지.”

낙빈은 차를 받으며 말했다.

“제가 따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승상가에서는 이번 일이 ‘사고’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냐?”

“다만, 도망간 하인을 찾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허허……. 찾아내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텐데.”

“그 하인은…….”

낙빈이 물었다.

“정말로 영 시랑의 지시라고 믿었던 것입니까?”

소 태사는 차를 마시다 잠시 멈췄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울렸다.

“위위경.”

“……예, 스승님.”

“무슨 말을 하는가.”

소 태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 일은 승상의 못난 아들이 하인을 시켜 제 형을 해친 것이지.”

낙빈의 손이 굳었다.

“그렇지 않은가?”

서재에 정적이 감돌았다.

낙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낙빈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승상가 내부 상황은 계속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조만간 원희와 다시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소 태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었다.

“조심하라고 하거라.”

소 태사가 잔을 천천히 비우고 내려놓았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내가 조문을 갔을 때 그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어.”

“그럴 만도 합니다.”

“이번 일은……힘들기는 했을 것이야.”

소 태사의 목소리에는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낙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배신할 염려는 없겠지요.”

소 태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네. 그 아이는 본래부터 배신할 인물이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지쳐서 무너질 가능성은 있겠지만, 적어도 승상의 편에 설 일은 없어.”

소 태사는 찻잔 속의 물빛을 들여다보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원한이 깊으니까.”

낙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소 태사의 말이 이어졌다.

“아들들의 일이 있으니 승상도 한동안은 조심할 게다. 황상께서 이 시기를 잘 활용하실 수 있어야 할 터인데…….

낙빈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병부로 갈 준비를 해도 되겠습니까?”

소 태사는 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갈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오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소 태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했다.

“그러니 있는 동안은 씨앗을 많이 뿌려 두거라. 한 계절에 다 자라지 않아도, 언젠가는 숲이 될 테니.”

낙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에 황상께서 스승님을 다시 중용하시려는 것 아니었습니까?”

“황상께서는 힘을 몰아주는 분이 아니야.”

소 태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분께서는 균형을 바라시는 것뿐이야. 그래도 황상의 뜻대로 되면 네가 원하는 자리로 갈 수 있겠지만, 승상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 목소리에는 가볍게 한탄이 섞였다.

“승상과는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네만……. 어렵구나.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영 대인은 어째서 내려놓을 줄을 모른단 말인가…….”

소 태사는 한숨을 쉬었다.

“사직(社稷)을 위해서라도, 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는 안 되는 법인데.”

잔 속의 찻물이 식어가고 있었다.

낙빈은 차를 마셨다. 쓴맛이 입안에 퍼졌다.

소 태사는 다시 차를 따랐다.

은은한 다향(茶香)이 서재를 채웠다. 고요했다.


*


승상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복도를 지나는 하인들은 발소리를 죽였고, 사랑채에서는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촛불 그림자가 벽에 흔들렸다.

영 승상은 심복들과 한창 논의 중이었다.



영유는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며칠째 향냄새 속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얼굴이 창백하고 눈 밑에 그늘이 졌다.

조문객이 들어왔다. 영유가 일어나 허리를 굽히려는 순간, 몸이 흔들렸다.

낙리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조심하십시오.”

“고맙다…….”

영유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낙리는 영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정리해 주었다.



조문객이 물러간 후, 낙리는 영유를 자리에 앉히고 사랑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낙리는 사랑채 쪽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촛불만 흔들렸다.



* 시랑(侍郞) : 육부(六部)와 육조(六曹)의 차관(次官)

** 홀(笏) : 신하가 임금을 만날 때 관복에 갖추어 손에 쥐던 패


목요일 연재
이전 26화탐탕(探湯)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