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나의 시작

나는 왜 사주에 끌렸을까

by Mr Godot

사주를 처음 본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친구 따라 간 사주카페에서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말했더니, 흰 종이 위에 네 개의 기둥이 세워졌고, 난생처음 보는 한자들이 가지런히 적혔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그 순간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기분. 세상이 아닌 어떤 질서가 나를 알고 있다는 착각.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

사주를 안다는 것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고민 따윈 머나먼 일이었다. 앞으로는 순탄할 거라 믿었고, 내 삶은 찬란하게 빛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의 사주에도 나의 책임이 따르고, 선택의 무게는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것을.
사주대로 사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운명의 틀 안에서도 매일의 선택은 여전히 고단하다.

나는 왜 사주에 끌렸을까.
이제 돌이켜 보면 그것은 불안에서 비롯된 이해의 욕망이었다.
‘나는 왜 늘 새로운 것을 좇는가, 왜 쉽게 지치는가, 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단서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주는 말해주었다.
내 사주에는 ‘비견’과 ‘식신’이 많다고.
홀로 견디는 힘은 있지만, 조직 속에 오래 머물긴 어렵고, 먹고살 궁리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내 불안은 나만의 결함이 아니라, 어떤 구조의 일부였다고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불안했다.
사주를 안다는 것이 나를 단정 짓는 일처럼 느껴졌고, 내 삶의 가능성이 글자 몇 개로 좁아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나는 여전히 그 경계에 서 있다.
운명을 읽고 싶지만, 동시에 나만의 문장을 쓰고 싶다.
예측하고 싶지만, 그 예측을 넘어서는 삶도 살고 싶다.
사주는 나를 꿰뚫는 듯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사주를 바라본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오지 않는 미래를 향해 지금을 읽고, 지금을 살아낸다.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든, 그 사주 위에 내가 새로 그려 넣을 여백이 있기를.
그 여백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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