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속 단맛
어린 시절, 다섯 살 즈음의 겨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설 명절을 앞둔 부엌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여러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셨다.
무·생강·당근을 아주 작게 썰어 놓으셨고, 잣을 까고 땅콩을 볶아 두셨다.
나는 그 옆에서 땅콩을 한 알, 한 알 집어 먹으며 지켜보곤 했다.
재료를 모두 섞은 뒤, 할머니는 그것을 부엌이 아닌 할머니께만 허락된 곳간의 항아리 속에 담아두셨다.
그 항아리는 어린 나에게는 마치 신비로운 보물상자 같았다.
나는 문밖에서 기웃거리며 언제쯤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기다렸고,
할머니는 묵묵히 뚜껑을 덮은 채 며칠이고 그 항아리를 지켜보셨다.
그 기다림 속에서 식혜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익어갔다.
아이의 입에는 그 맛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달지도 않고, 오히려 맵고 알싸하기만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이런 걸 마셔야 할까? 밥알 동동 뜬 달달한 감주가 훨씬 좋은데…”
그러면 할머니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으시곤 했다.
“이게 진짜 식혜다, 니껴?”
그 말은 꾸짖음이 아니라 다정한 가르침이었다.
안동식혜는 단순히 한 집안의 별미가 아니다.
경북 북부, 안동·봉화·영주를 중심으로 한 ‘니껴 문화권’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의문문 끝에 “~니껴?”라 묻는 말투를 쓴다.
“밥 잡솼니껴?”, “어디 가니껴?”
그 어미 하나가 곧 문화의 경계를 이루듯,
안동식혜 역시 경상도 안에서도 일부 산간 지역에서만 즐기던 특색 있는 음식이었다.
안동식혜라 불리지만, 내게 그것은 어디까지나 봉화의 겨울 음식이다.
안동이라는 이름은 그저 행정구역의 구분일 뿐, 내 기억 속의 식혜는 언제나 봉화 집안의 부엌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봉화 출신이라도 강원도 접경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시집 와서야 이 음식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지역의 경계가 뚜렷하고, 또 특색이 강한 음식이었다.
니껴 문화권을 대표하는 안동식혜는 참 그 동네를 닮았다.
첫맛은 알싸하지만 끝에는 미묘한 단맛이 남는다. 산간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도 그러했다.
거칠고 고단했으되, 끝내 따뜻한 정을 잃지 않았다.
매운맛 속에 숨어 있는 단맛처럼, 거친 삶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나의 아내도 나와 결혼을 하고서야 이 음식을 처음 보았다.
아직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맛을 안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뒤 한 사발 들이키면,
알싸함이 입안의 니글거림을 진정시켜 주고,
김치처럼 매콤하면서도, 무에서 우러난 국물은 동치미처럼 시원하다.
엿기름에서 배어 나오는 은근한 단맛 위에
잣과 땅콩의 고소한 향이 더해지니,
그 맛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오직 이 고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요즘 가끔 겨울에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여전히 안동식혜를 담가 내주신다.
붉은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어린 날의 부엌 풍경이 떠오른다.
무채를 썰던 할머니의 굽은 어깨와, 나를 바라보며 지어 보이시던 잔잔한 웃음이 함께 스며든다.
안동식혜의 간단한 레시피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늘 곁에 있었고, 늘 어머니와 할머니가 만들어주셨기에
굳이 내 손으로 담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어머니에게 그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봉화라는 지역이 언젠가 지방 소멸의 이름으로 불릴지 모르는 것처럼,
이 지역을 대표하던 음식 또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맛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음식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와 한 고장의 삶을 함께 잃는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그것을 안동식혜라 부르지만, 내게는 다만 우리 집 식혜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것은 내 고향 봉화를 닮은 음식이고,
내 삶의 첫 기억이며,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을 데워주는 겨울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