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사랑하며, 조용히 새벽을 살아간다
한때 나는 밤이 아까운 사람이었다.
친구들과는 헤어질 줄 몰랐고,
지금의 아내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작은 휴대폰 불빛 아래에서
졸음과 싸우며 통화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땐 시간보다 감정이 중요했고,
피곤함보다 설렘이 앞섰으며,
내일보다 오늘 밤이 더 절실했다.
그 시절, 나의 청춘은 밤에 머물러 있었다.
삼십 대 초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나와 친구들은
늘 같은 질문을 품고 하루를 견뎠다.
"오늘 하루는 살아낼 만했는가."
기쁜 날엔 술을 마셨고,
슬픈 날에도 술을 마셨으며,
누군가 이별을 통보받으면 그날도 어김없이 술자리가 열렸다.
어제와 비슷한 대화가 반복되었고,
시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렀다.
그러나 그 밤들은 어쩐지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밤거리의 불빛을 좋아했다.
어둠 속에서 은은히 번지는 조명 아래
청춘은 어딘가 불완전했고, 그래서 더 뜨거웠다.
불확실한 내일이 두렵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아직 가능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새벽이 아깝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
사람들의 말소리도, 자동차의 엔진 소리도 머뭇거리는 그 시각에
나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로비의 형광등은 차갑고,
복도에는 젖은 수건 냄새가 희미하게 떠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스트레칭을 하며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른 새벽, 아무 말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말은 없지만
묘한 동질감이 있다.
우리는 아마도 모두,
밤을 지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물속은 조용하다.
수면 위로 흩어지는 빛,
등 뒤를 감싸는 물의 온도,
그리고 반쯤 잠든 몸이 깨어나는 그 감각.
밖으로 나와 물기를 털고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면
이슬을 머금은 나무들이 있다.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놓칠까 봐
밤을 버티는 사람이 아니고,
무언가를 오래 지키기 위해
새벽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
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청춘이란,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나를 잃어가던 시간이기도 했음을.
지금 나는 잃은 것들을 돌아보며,
되찾은 삶을 살고 있다.
더는 요란하지 않고,
덜 눈부시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삶을.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며
조용히 새벽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