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기다렸던 건 결국 나였다.
대학교 시절, 연극동아리 선배의 손에 이끌려
무슨 연극인지도 모른 채 들어갔던 소극장.
막이 오르고, 무대엔 허름한 나무 하나.
두 사람이 서성이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처음에 그게 연극인 줄 몰랐다.
기다리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대사는 무언가 철학적인 듯하면서도 이해되지 않았고,
관객의 웃음마저 어색했다.
‘이게 다야?’
그렇게 막이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공허한 장면이 오래 남았다.
무언가가 불편했고, 마음 어딘가를 자극했다.
그 이후, 영미희곡 수업에서 한 학기 내내 그 작품을 분석하게 되었다.
토론 시간마다 고도는 누구인가, 그는 정말 오긴 오는가,
왜 그들은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가에 대해 학우들과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고도를 ‘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사회 시스템’, ‘희망’, ‘죽음’, ‘권력’이라 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어딘가 불안했고,
그 둘처럼 무대에서 서성였던 감정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무대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다.
책상 앞에 앉아, 또 보고서를 고치고, 사람들의 감정을 조율하고,
혹시라도 어긋날까 조심하며 다시 한번 생각하고
“조금만 더 참자”, “이 고비만 넘기면”,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왔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고도를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조건, 더 합리적인 상사,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동료,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삶.
그리고,
지금이 아닌 어딘가에서 완성된 나 자신.
그런데 문득 든 생각.
그 기다림은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혹시 그 끝은 존재하기는 할까?
요즘 자주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기다려왔던가?”
“지금 내가 바라는 건, 내가 바란다고 해서 오는 것인가?”
“기다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움직여야 할 시기가 아닐까?”
그 질문에 답하듯
나는 조금씩 내 삶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창업을 꿈꾸고,
내 이름으로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예준이와 아내와의 시간을 전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내 삶의 중심을
더 이상 누군가의 승인에 두지 않기로 했다.
이젠,
내가 나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인물은
끝내 고도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나가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렀다.
그건 어떤 포기였을까,
혹은 어떤 희망이었을까.
나는 이제 그 장면을 조금은 다르게 본다.
그들이 고도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실은 자신이 움직일 용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기다림이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데리고 걸어 나갈 시간이다.
늦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무대에 있고,
조명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고도가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를 기다려왔다는 것,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