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계절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수박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과일이다.
그것은 단지 복날의 갈증을 달래는 음식이기 이전에,
어쩌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북 봉화, 산자락 밭두렁에 붉은 꽃이 피기 시작하면
부모님은 올해도 조용히 수박 농사의 일정을 시작하셨다.
그분들의 농사엔 말이 적었고, 손이 먼저 움직였다.
삼십 년이 훌쩍 넘도록,
두 분은 여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수박을 심고, 망을 치고,
비닐을 걷고, 달을 보고,
그 크고 둥근 열매를 품에 안고 살아오셨다.
아버지는 고향을 지키는 분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지켜오신 땅과 삶을 이어받아,
마을을 떠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젊은 날 객지로 나가
머리가 희어진 채 돌아올 때까지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계셨다.
들녘에서, 밭고랑에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인사 속에서
그분은 늘 같은 자리에 서 계셨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억척스러우셨다.
일에 있어서도, 욕심에 있어서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정에 있어서도.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들에서 일하시던 그 억척스러운 새댁은
이제 고향 경로당의 회원이 되셨다.
고무줄 바지를 입고 시장을 오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듯한 감정을 일으킨다.
나는 그 수박을 먹고 자랐다.
그 말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학비며 책값, 자취방의 전기세까지
모두가 수박이 만들어준 여름의 결실이었다.
누군가 내게 “너는 어떻게 배웠니?”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수박이 저를 키웠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부모님은
한 통씩 수박을 보내주신다.
초복 즈음이거나 장마철이 끝나갈 무렵,
테이프를 두껍게 감고, 신문지를 겹겹이 두른
단단한 수박 하나가 나에게 도착한다.
그 포장을 풀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진다.
신문지를 한 꺼풀 벗기고,
투박하게 붙은 테이프를 떼어낼 때마다
나는 마치 부모님의 정성을
조심스레 풀어헤쳐보는 기분이 든다.
그 한 통의 수박 안에는
햇살 아래 굽은 허리,
무릎을 접고 밭고랑에 앉으시던 모습,
그리고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진 어머니의 손길이 함께 담겨 있다.
내 고향의 7월은 수박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들녘 한편에는 껍질이 갈라진 수박이 버려져 있고,
그 옆에는 잘 익은 수박이 노끈에 묶여
낮은 트럭 짐칸에 실려 나간다.
어떤 수박은 너무 일찍 익어 쓰러지고,
어떤 수박은 타이밍을 놓쳐 썩어간다.
풍작이어도 마냥 기쁘진 않고,
흉작이라 해도 그 속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수박이 익어가는 그 시기의 봉화는,
계절마저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여름과 가을 사이,
고추밭이 붉어지기 전의 그 짧은 틈에 사람들은
들숨과 날숨처럼 고단한 허리를 세우고,
서둘러 국수를 말아먹고,
마을 입구 정자에 앉아 멀어지는 햇볕을 바라본다.
그 계절은 잠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삶은 무겁다.
기대와 좌절, 고단함과 기쁨이
고스란히 밭머리에 앉아 함께 익어간다.
올해의 수박은 유난히 단맛이 깊었다.
그러나 그 단맛 뒤편에서
묘하게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제 아버지의 허리는 예전 같지 않고,
어머니의 무릎도 자주 붓는다.
그래서 올해의 수박 앞에서는,
나는 괜히 조심스러웠고,
괜히 더 오래 들여다보았으며,
괜히 더 고마웠다.
불안정한 하루와 불투명한 내일 앞에서
나는 자주 흔들리고 망설인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도
매해 여름 수박을 받아 들며
변함없는 단 맛에 조용히 위로를 얻게 된다.
“고맙습니다. 올해도.”
그리고 나는
그 단면 속의 단맛을 입에 머금으며
어머니의 여름, 아버지의 계절,
그리고 지금의 나를 키워준 그 모든 시간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