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여름이지만, 속은 가을로 접어드는 마음
입추가 되었다.
절기上으론 가을이라 하나,
햇볕은 아직 세차고, 매미 소리는 귀를 타고 울려온다.
바람도 더위에 눅눅하다.
누가 보아도 분명히 여름인데,
달력만은 슬그머니 계절을 바꾸어 놓는다.
나는 이 절기의 얄팍함을, 어쩐지
그해 마흔 즈음의 내 나이와 닮았다고 느낀다.
겉으로는 여전히 젊은것 같으나,
속으로는 무엇인가 저물고 있는 듯한 그 모호함.
조금씩 덜 단단해지는 기분,
문득문득 허공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날들이 이어진다.
어쩌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추는 아직 여름 속에 있으면서도
곧 가을이 오리라는 걸 아는 시기다.
그렇기에 바람 속의 습기는 조금씩 말라가고,
낮의 그림자도 서서히 길어진다.
마흔의 삶도 그러하다.
한창을 지난 것 같지는 않으나,
무언가 이제는 덜 뜨거워졌음을 몸이 먼저 안다.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거두어야 할지를
하루에 몇 번씩 곱씹는다.
그 곱씹음은 어떤 날엔 반성과 후회로,
또 어떤 날엔 미련과 회한으로 찾아온다.
가끔은 애써 외면해 왔던 나의 민낯과 마주하고
조용히 쓴웃음을 지어야 하기도 한다.
수확을 말하기엔 아직 두렵다.
이른 태풍 한둘은 더 지나가야 할 것이고,
비바람이 언제쯤 그칠지도 알 수 없다.
올해의 나락이 무르익었는지,
혹은 아직 물이 덜 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삶의 과실이 어느새 익어있기를 바라지만
내 안의 어떤 것은 아직도 푸르기만 하다.
불안은 내 안에서 자주 몸을 뒤척인다.
잘못 꺾은 가지처럼,
무엇을 버려야 했는지조차 헷갈리는 날이면
그간의 선택이 서툴고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탓하기보다,
그조차 ‘익어가는 과정’이라 믿고 싶다.
입추는 조용히 준비하는 계절이다.
들판은 겉으론 여전하지만,
뿌리 아래에선 변화가 이미 시작된다.
마흔의 나는 아직도 달리고 있지만,
마음 한 자락 어딘가는 이미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욕심은 조금 덜어내고,
남은 시간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
다만 그것이면 좋겠다고,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제는 무엇을 더 얻기보다
내 안에서 단단해지고 싶은 바람,
그 잔잔한 갈망이 나를 움직인다.
언젠가 가을은 완연히 올 것이다.
모든 잎은 색을 바꾸고,
바람은 밤마다 서늘해질 것이다.
그때 나는 지금의 나를 기억하리라.
입추의 마흔,
아직 더위 속에 있었지만
조용히 단단해지려 했던 한 계절을.
나는 아직, 여름 속에 있다.
그러나 마음은 분명,
가을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이면
비록 느려도 괜찮다고
오늘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