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보고서를 잘 쓰지 못한다.
보고서란 되도록이면 짧고,
되도록이면 직관적이어야 하며,
되도록이면 감정을 담지 않아야 한다.
사실만을 나열하고,
객관으로 무장한 언어를 사용하며,
이유보다 결론을 먼저 말해야 한다.
그래서 보고서는,
삶과는 반대로 써야 하는 글이다.
우리는 보통 삶을 그렇게 살지 않는다.
의심하고, 주저하고, 때로는 감정에 이끌려
무엇 하나를 결정하는 데에도 긴 시간을 쓴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그런 여백이 없다.
“이 방향이 옳습니다.”
그 말부터 써야 한다.
확신이 없는 사람도,
그 순간만큼은 확신을 가장해야 한다.
나는 직장인이다.
보고서를 수시로, 때때로, 그리고 끊임없이 써야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직무이자 책임이며, 때로는 나를 낯설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보고서를 쓸 때마다
내가 아닌 사람인 척하는 기분이 든다.
분명 오늘 하루도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듣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건만
그 모든 것을 하나의 결론으로 요약하려 하면,
마치 내 마음을 깎는 것만 같다.
삶은 미괄식이다.
살아본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이해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다르다.
그런 말의 맥락과 마음의 결은
첫 문장에서 이미 잘려나간다.
사람의 문장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보고서의 문장은 결과에서 시작된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보고서를 쓴다.
아주 단정하게, 아주 간결하게.
그러나 마음속 어딘가에선
조용히 중얼거린다.
“나는 아직, 이유를 먼저 말하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