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gnition of the Modern East India Com
외국계 회사에 대한 이미지는 언제나 반짝였다. 미디어는 ‘글로벌 무대’라는 화려한 포장으로 그려냈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높은 연봉·자유로운 문화·수평적 관계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마치 국내 기업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기회와 경험이 그곳에 있는 듯, 많은 이들의 부러움이 뒤따랐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언젠가 외국계에서 일하게 되면 더 큰 세상에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몇 번의 이직 끝에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내 자리는 마치 식민지 총독부의 하급 관리 같았다. 겉으로는 결정권을 가진 듯 보였으나, 실상은 본사의 지시를 전달하는 통로에 불과했다. 과정은 삭제되고, 결과만이 요구되었으며, 그마저도 회사의 이윤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무력해졌다. 직원은 사람이 아니라 생산 수단으로 취급되는 순간이 많았다.
외국계라는 틀 안에서 한국인의 습성은 묘하게 뒤틀렸다. 성실함은 책임 전가로 변했고, 수평적 관계는 텃세와 은근한 위계 다툼으로 변질됐다. 팀워크는 개인 성과 챙기기로 흩어지고, 충성심은 커리어 계산법으로 환산됐다. 끈기는 본사 보고용 과잉 노력에 소모되고, 따뜻한 정은 네트워크 정치로 비틀어졌다. 이는 개인의 탓이라기보다, 구조가 사람을 그렇게 빚어낸 결과였다.
국적별 성향 차이도 뚜렷했다. 미국계 회사에서는 성과와 보상이 모든 판단의 잣대였다. 자유와 자율을 말했지만, 실상은 오직 결과만이 언어였다. 반면 독일계 회사는 형식상 워라밸과 절차, 규율을 중시했으나, 융통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하나는 효율이라는 압박으로, 다른 하나는 규율이라는 경직으로 다가왔다.
Joint venture는 더 복잡했다. 외국계이면서도 한국 파트너사가 있어, 두 명의 시어머니를 동시에 모시는 꼴이었다.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 그 틈에 낀 우리들의 삶은 콩쥐처럼 고단해졌다.
본사 출장은 늘 살얼음판 같았다. 출장이라기보다 사실상 ‘심사’였다. 몇 장의 숫자로 가득한 슬라이드로 한 해의 성과를 증명해야 했고, 그 순간 본사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시장 상황도, 내부 사정도, 개인의 노고도 의미가 없었다. 오직 숫자와 결과만이 존재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니라, 수치와 그래프의 대변인에 불과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외국계에 오래 다니다 보면 ‘적당히’라는 생존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과한 성과는 이듬해 더 높은 목표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에, 차라리 적당한 성과가 지혜로운 선택이 된다. 그래서 연말이면 모두가 자연스레 속도를 늦추는 묘한 합의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
물론 내가 겪은 경험이 외국계를 전부 대변할 수는 없다. 자율과 보상을 존중하며 건강한 문화를 유지하는 회사들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내가 지나온 자리에서는 사람보다 시스템이, 과정보다 숫자가, 관계보다 이윤이 더 크게 드러났을 뿐이다.
배운 것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성과를 내는 법,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는 방식, 시장을 읽는 눈을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빛날 무대는 남이 짜놓은 판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려낸 무대 위라는 사실을.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 할 일만 성실히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나는 생각이 많고, 구조를 따지기를 좋아하며, 늘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 회사든 외국계든 방식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모두 이윤을 좇는다. 한국 회사에서 정을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다면, 외국계에서 자율성을 기대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환상은 깨졌지만, 깨진 자리에는 단단한 자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자각이 나를 다음 무대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