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욕망에 대한 고찰
가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을 탐하는 마음을
우리는 욕망이라 부른다.
어쩌면 욕망은 오늘을 살아내게 하고,
하루의 고비를 순간적으로 넘어가게 하는 작은 가속기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그 욕망을 잘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마음을 구조화하여,
상품이라는 형체로 길을 내었다.
광고는 그 길에 불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선명히 빛난 이름이 나이키였다.
1971년, 오리건의 작은 창고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승리의 여신 이름을 빌려 쓰며 세상에 등장했다.
학생의 손에서 단 $35에 그려진 스우시 로고는
이제 세계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는 기호가 되었다.
“Just Do It.”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마지막 말에서 비롯된
이 구절은 망설임을 잘라내는 칼이 되었고,
억눌린 욕망에 호흡을 불어넣는 주문이 되었다.
2005년 마스터스, 타이거 우즈의 16번 홀.
공은 숨을 고르듯 홀 앞에서 멈추었다.
세계의 시선은 정적 속에서
흰 표면에 찍힌 스우시 하나에 붙들렸다.
그리고 마치 세상의 숨결이 풀리듯,
공은 홀 속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은 스포츠의 기적이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가 쓴 가장 완벽한 광고이기도 했다.
우리는 신발을 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꿈을 샀던 것이다.
조던의 농구화는 우상을,
호날두의 축구화는 세대의 환호를 불러냈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했고,
우리는 그 구조 안에서 기꺼이 환호했다.
그러나 그 신화는 내 삶에도 남아 있다.
내 발을 지탱하는 것은 화려한 농구화도,
값비싼 축구화도 아니다.
그저 소박한 흰 러닝화 한 켤레일 뿐이다.
밑창에 묻은 흙과 먼지는
내가 욕망을 따라 걸어온 길의 증언이 된다.
그 신발은 이름값 없어도
매일 새벽길에서 내 발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나이키는 단지 신발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하나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은 자본주의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 흔적 속에서 나는 내 삶의 발걸음을 본다.
뛰고, 헤엄치고, 오르려 했던
나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도
이 브랜드와 함께하며 자극을 받아왔다.
그 자극 속에서 나는 여전히 길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나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곳에
물질 욕망에 대한 예찬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천박하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물질적 인간이고,
그 물질이 오늘도 내 삶을 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