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잠시 빌리우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선녀의 치맛자락이 큰 바위를 스칠 때마다
그 바위가 닳아 사라지는 시간이 ‘겁’이라고.
아득히 긴 시간이다.
그 반대편에 선 것이 ‘찰나’다.
눈 한 번 깜빡일 사이,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사이,
이미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은 금세 과거가 된다.
말을 꺼내는 그 틈에도,
숨을 고르는 그 짧음에도 현재는 사라진다.
어쩌면 현재란 애초에 없는 것일지 모른다.
과거로 가라앉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덧없음 속에서
삶의 가장 선명한 빛이 드러난다.
Carpe diem, 오늘을 붙잡으라.
그러나 그 말 또한 역설이다.
붙잡는 순간, 지금은 이미 과거가 된다.
우리는 오늘을 붙잡는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순간의 그림자를
더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찰나를 산다.
그 짧음 속에서만 영원이 번쩍이기 때문이다.
순간 순간의 장면이 한편의 영화가 되듯
번쩍이는 찰나가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룬다.
낯선 이의 하루를 환하게 바꾸고,
주저하던 발걸음 하나가
인생의 길을 조금 틀어놓듯
사소해 보이는 찰나가
훗날에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우리의 삶이 직조된다.
우리는 어떻게 찰나를 더 깊게 살 수 있을까.
호흡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걸음을 반 박자 늦추며
발끝이 땅을 딛는 감각을 느끼는 일.
따뜻한 찻잔이 서서히 식어가는 순간을
끝까지 지켜보는 일.
주의가 깊어질수록,
찰나는 더 넓어진다.
별똥별이 하늘을 가르는 찰나.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찰나.
아이의 손길이 내 손에 스치는 찰나.
그 순간들은 모두 사라지지만,
사라진 뒤에야 더 깊은 빛으로 남는다.
사라짐은 공허가 아니라
흔적의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찰나는
잠시 빛났다 사라지는 한여름밤의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건네주는 작은 쉼표다.
사라지기에 빛나고,
멈추기에 다시 이어진다.
나는 그 찰나를 예찬한다.
현재를 잠시 빌리우며,
그 덧없음 속에서만
삶은 가장 찬란히 빛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