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목적인 세상을 잊지, 잃지 말아야 함을, 언제나
바야흐로 2005년, 내 나이 초등학교 5학년, 정릉에서 대치동으로 이사 온 이후 처음으로 정릉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143번 버스를 타고 홀로 먼 여행길?을 떠난다. 설렘, 조금은 두려움이 공존한다. 먼 길을 떠나야 하니 슈퍼에서 300원짜리 껌 하나를 산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오랜만의 바깥 구경, 그리고 뒷자리에 있는 아주머니가 껌 하나만 씹어도 되냐고 물어봐서 하나 드린다. 몇 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다행히 친구가 정시각에 정류장으로 나와있었고 신나게 목욕탕에서 논 후에 김밥천국에서 뒤풀이를 한다.
물론 어렸을 때 혼자 경험했던 첫 먼 여행길이어서 더 기억이 선명한 걸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저 때 저 버스 안에서의 기억은 생생하다. 한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멍도 때리고, 딴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버스 안에서 한 시간 동안 멍을 때리다니,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세상에 재밌는 일들, 중요한 일들을 다 놓칠 것 같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그것을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붙잡는 일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을 읽은 후 유독 초등학교 5학년 때 저 버스 안에서의 풍경이 생각이 났다. 친구가 정시각에 나올까? 저 버스기사님은 왜 저리 화가 나있을까? 만나서 뭐부터 하고 놀지? 잡생각도 해보고, 계획도 짤 수 있었던 이유는 방해받지 않았던 시간의 공백 덕분이다.
책 속에서 흥미로웠던 부분 중에 인간의 행복과 휴가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여행을 앞둔 사람보다 여행을 앞두지 않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낮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의 행복도와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의 행복도에는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기대감'의 차이가 행복도를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기 전의 설렘, 기대감만으로 사람들은 설레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휴가 자체보다 휴가에 대한 기대에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 일리가 있다. 그러면서 책은 묻는다, '왜 우리는 그런 즐거운 경험을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스마트폰 이후로 사람들의 여행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엄청난 정보, 그리고 인스타용 여행 방식까지. 그런데 만족도가 높아졌을까?
어떻게 보면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뜻 밖이라는 유용한 감정을 조금씩 앗아 가면서 시간과 감정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에서든 관계에서든, 수많은 영역에서 말이다.
이곳은 별로일 거야라고 단정 지었으나 의외로 가장 강렬한 기억을 주었던 뜻밖의 순간,
이 사람은 이럴 거야라고 단정 지었으나 의외로 다른 점을 발견하면서 생각이 바뀌는 뜻밖의 감정,
사실 사람은 뜻 밖이라는 감정의 연속 속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 속에서 성장을 하지만 지금은 그 부분을 생각하는 공백의 시간이 철저히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지고 조급해지면서, 인내심과 주의력이 약화되고 있다. 지루함은 대단히 인간적인 경험이다. 미국의 18~29세의 젊은이 중 72퍼센트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최근에는 차 안에서 신호가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는 몇 초 안 되는 시간에도 스마트폰으로 손을 뻗는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주위를 다른 곳에 맡겨서 지루함에 대처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인내심이 약해지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공감 능력이 약해지고, 주의력이 약해지면 자신의 생각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민자 단속 작전 과정에서 37살 여성이 요원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에 대한 진위여부가 진행 중이지만 직관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즉시 사망을 시킬 정도의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망을 시키기까지의 시간은 정말로 한 순간에 이뤄졌다.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키보드로 한 사람을 나락 보내는 일의 속도가 총 세발의 속도와 비슷해진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의 말속에서,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은 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까? 어릴 때 어떤 경험을 했던 걸까? 아 그래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대신 (무조건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갈등을 피할 수 있는 관계는 없기에) 손절하는 방법에 대한 인스타 포스트가 알고리즘을 지배하며 자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는 공백은커녕,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공백조차 없어진다.
더욱더 거칠어지고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대한 능력도, 의지도 조금씩 상실해 간다. 무조건 스마트폰 때문이야 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스마트폰이 감정을 조금씩 무력화시켜가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본질에는 편리함이라는 가면으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기술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최고점에 와있다.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써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3년 전 인스타그램을 끊은 후 가장 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던 때는 친했던 여동생이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니 직접 연락한다면서 자신의 임신 소식을 알려줬을 때다. 임신 소식을 목소리로 직접 전해 듣고 어찌 이리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들던지. 물론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그 소식을 접했더라도 기뻐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목소리로 전달받으니 더욱더 축하해 줄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관계가 인간의 행복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동생의 연락 대상은 오직 나였었고, 그 연락의 도구는 목소리였고, 내용은 임신 소식이었다. 단순한 임신 소식이 아닌, 좋은 관계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인스타를 하면서 이 소식을 접했다면 이토록 짜릿한 뜻밖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 인내, 지루함, 백일몽,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다.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편리함'이다. 편리함은 효율적이다. AI 시대로 온 지금 우리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기술에서 이제 뇌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까지 넘어왔다. 이토록 편리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니.
그런데 사람은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해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본질은 '불편함'이다. 불편함은 기본적으로 비효율성을 동반한다. 그래서 불편함과 비효율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인간이 끊임없는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함은, 감정을 느껴야 할 시간에 스마트폰 화면이 있었고 비효율적이어야 할 때 극한의 효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가족, 애정, 공동체, 사회로 연결된 타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낸다... 그러나 우리에게 타인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 공동체가 우리가 잘 사는데 필요한 기량의 저장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AI 기술에 대한 배움을 포기한다거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만큼 잘 알아야 하고 활발하게 배워야 함이 동시에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지금 2026년 AI 시대에 뒤처지고, 시대착오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리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존재 일 것이다. 더 나은 기술은 결국 '도구'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물론 되어서도 안된다. 훌륭한 도구가 훌륭한 목적을 세워주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목적만이 어떻게 하면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끔 할 것이다 (적어도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가 인간다울 수 있고, 상대방을 인간다울 수 있게 해주는 그 목적, '사랑'이라는 것의 운전자는 우리 인간 스스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잘 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최근에 지겹도록 듣고 있는 한로로의 0+0의 가사를 띄우고 싶다.
기술의 폭풍 속에서 고요함 속 존재의 숨결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검은 눈동자의 사각지대를 찾으러 가자
여름 코코아 겨울 수박도 혼나지 않는 파라다이스
앞서가는 너의 머리가 두 볼을 간지럽힐 때 나의 내일이 뛰어오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저 너머의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단다'
그러므로, 어렵더라도 존재를 잊지,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