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들의 몇 개의 얼굴을 보며 살아가는가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에 못지않게 5월은 정치를 생각하기에 좋은 달이다.
5-18 광주민중항쟁과 노무현 대통령 서거, 그리고 미국에서 Black Lives Matter이라는 운동을 만들어낸 조지 플로이드의 무고한 희생이 있었던 달이기도 하다. 그런 5월에 읽게 된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은 이 계절을 더욱더 깊게 느끼게 해 줬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를 알아가며 끊임없이 반복하는 문장에 눈이 간다. ‘알지 못한다, 감히 다 알 수 없다’ 등의 문구다. 소설 속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꽤 많이 이 문구를 반복한다.
작가는 왜 알지 못한다고 했을까?
나는 문장 그대로 알지 못하기에, 알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에 알지 못하는 그대로 놔두겠다는 의지도 있었겠지만, 감히 한 사람이 타인의 일생을 함부로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작가의 겸허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학수는 왜 자신의 아버지도 아닌데 그렇게 노인정에 가서 대신 화를 내어줬을까? 대체 언니는 언제 그렇게 음식을 다 준비했을까? 그렇게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 대의 순경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평생 미워했던 자신의 형의 유골을 받아들이자마자 오열했던 작은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는 모르겠다고 솔직하고, 용기 있게 고백한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을 보고 피식 웃고, 초반에 소설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그저 ‘쯧쯧, 꼴통 노인네’였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내가 아버지에게 들었던 감정은 불행했던 시대에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은 한 사람의 ‘살아 냄’에 대한 무한한 존중심이다. 왜 나는 이 어른을 함부로 단정했을까.
지금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뉴스의 헤드라인, 첫 정보만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는 세상 속에 살아간다. 어디 뉴스뿐이겠는가? 어쩌면 삶 속에서 스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당장 오늘 마주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떤 어리석은 판단으로 그들의 ‘살아냄’을 놓치고 있던 걸까?
이 소설은 실제 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고, 그 아버지의 장례식 장 속 풍경을 작가가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보게 됐다고 얘기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유독 5월이 그러했다. 5월은 유독 의미 있는 죽음이 많았던 계절이고, 나 역시 그 죽음들을 통해 비로소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알지 못했던 5-18 민주항쟁을 배우며 나의 뿌리의 기반을 세워 준 그 시절의 모든 존재들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꼈고, 적당히 내 것만 챙기면서 살자 라는 생각으로 살아갈 때 우연히 자신을 던진 노무현이란 사람을 알게 되며 목적을 가지게 되었고, 겉으로는 고상한 척했지만 내 안에 자리 잡았던 무심함을 ‘I can’t breathe’라고 외치며 백인 경찰에게 희생당한 조지 플로이드를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겠다는 교만함이 서른을 넘어선 나를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던 지금 이 시기에, 그 교만함이 이 소설의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통해 부끄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소설 속 문장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그대들의 몇 개의 얼굴을 보면서 살아가는가.
나는 이번에도 소설 속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몰랐던, 또는 애써 외면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알아가고 마주한다. 그렇지만 가장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장 의미 있는 고백은 앎을 통해 모름을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알아갔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몰랐음을 고백했던 것처럼 나도 고백하고 싶다. 몇 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다 알았다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그 생각이 부끄럽다고 말이다.
5월은 이런 고백을 하기에 알맞은 계절이다. 그리고 이 계절에 만난 빨치산 아버지의 딸은 어리석음으로 부끄러워하는 나에게 모름을 고백해도 괜찮다고 용기를 준다. 그리고 빨치산 아버지는 나에게 묵직한 위로 한마디를 건네준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