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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chan Aug 25. 2023

랩걸 (책생각)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어떤 한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존중할 수는 있으나 무조건 존경하지는 않는다. ‘존중’은 내 인격의 의지로 할 수 있지만 ‘존경’은 상대의 인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은 과학자들에게는 유독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좋은 과학자를 향한 무한한 존경심이 들었다. 그들이 모른다는 사실을 전제로 수많은 발견을 통해 ‘알아감’을 얻는 자세, 과정 속에서는 감정적 사고를 철저히 배제하지만 그 과정 후 발견한 사실에는 풍부하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자세, 그리고 그 자세를 가능케 했던 그들의 원동력에는 본질을 잃지 않는 태도가 깃들여 있기까지, 무엇 하나 존경하지 않기 어렵다.


세상의 나무들을 수십 년간 인내 속에 연구하면서 어떠한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환희를 느끼는 이 책의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의 자세야말로 우리 인간이 스스로 삶을 대하는 가장 이상적 자세가 아닐까?라고 잠깐이나마 확정 지어본다.


그렇지만 동시에 호프 자런과 그의 연구 동반자 빌은 별종이다. 둘은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 가운을 벗고 실험실로 돌아가 실험복을 입었을 때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느끼는 자들이며, 버거를 얼렸다 다시 데워도 물리적 특징에 큰 변화가 오지 않음을 발견하고 행복해한다. 내가 이들을 향해 별종이라 느끼는 감정이 주관적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북클럽에서 함께한 자들 역시 이들의 행복 경로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일부분 동의를 해주는 것 같아 보였다.


많은 나무들이 본문에 나오지만 마음속에 가장 남는 나무는 사드카 버드나무다. 보통 나무들은 애벌레들의 공격에 저항하여 서로 살아남기 위해 땅 밑 뿌리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아서 애벌레들 입맛에 맞지 않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서로 떨어져 있는 나무들은 신호전달에 실패하여 공격받으며 병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드카 버드나무는 1-2 키로 떨어져 있지만 땅 밑이 아닌 땅 위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애벌레에게 독이 되는 이파리를 만들어내어 애벌레들을 기적적으로 몰아낸다. 나무는 감정이 없다고 얘기했던 자런도 이 사실을 보며 얘기한다. '그러나 어쩌면, 서로에 대한 감정과 관심은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위기가 닥치면 나무들은 서로를 돌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자런과 빌의 사이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들은 같은 뿌리를 타고나지 않았지만 나무를 연구한다는 한 가지 목적을 공유하며 땅 위에서 서로를 돌보았다.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선한 목적을 공유하는 자들의 돌봄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세상의 끝에서 빌은 끝이 없는 대낮에 춤을 췄고, 나는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를 받아들이며 느껴진 그 힘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그 힘을 내 안으로 돌려 나 자신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도록 했다.'


사드카 버드나무와 자런의 이러한 고백을 보며 부족본능과 가족주의라는 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명의 호모사피엔스 종인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금 이 단락에서 생각해 본다. 어쩌면 빌과 자런, 그리고 사드카 버드나무 같은 종들이 별종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틀린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발견을 통한 설렘을 향해 갈 용기가 있는가? 같은 뿌리가 아니어도 존재들을 포기하지 않으며 돌볼 자신이 있는가? 얼린 버거를 다시 데워 먹으며 서로를 돌보았던 자런과 빌의 그 따뜻한 공기를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보통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우리들은 무엇에 감동하며 무엇을 목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마지막 부분에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는 자런의 신앙 고백을 할 만큼 과학 신앙이 깊지 않은, 아직은 인문학적 신앙이 더 깊은 나로서는 지금은, 사드카 버드나무를 나 자신에게 깊이 투영해보고 싶다. ‘그래, 이왕 산다면 행복하게 살자. 그런데 충만한 행복은 목적이 있어야 해, 그 목적이 이왕이면 선한 것이면 좋을 거 같아. 선한 삶은 더불어 돌보며 사는 삶이고 사랑하는 삶인 것 같아. 그리고 사랑은 내어주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힘을 기르는 것 아닐까? 그것이 뿌리를 공유하지 않는 존재들이어도, 또 1-2킬로미터, 아니 수백 킬로 미터 떨어진 존재라도 말이지.’


여성 과학자로서 수많은 삶의 과정 속에서 본질을 잃지 않고 걸어간 그녀의 이야기는 독자로써 큰 축복이었다. 이러한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해 준 호프 자런에게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책 속에서 출산을 앞둔 자런에게 여성 의사는 ‘여성은 강해요’라고 얘기해 준다. 그리고 나는 슬며시 대댓글을 달고 싶다.


‘정말 그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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