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겸 Aug 18. 2022

1.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하나

1997년 IMF 외환 위기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 경력 쌓기

우리나라가 1997년 겨울쯤, 외환위기가 닥쳤고 뉴스에는 맨홀 뚜껑을 훔쳐 가는 사건과 도로의 철근이라면 무조건 없어진다는 소식통에서 나는 1998년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는 상업고등학교라 지난 3월부터 이미 취업이 한두 명씩은 나가야 했지만, 졸업 무렵에도 회사는 조용했다. 나는 대학 진학반이라 대학교에 가면 그만이었지만 어머니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무슨 대학이냐며 이제껏 키워준 은혜를 갚으라 큰소리쳤다.


그렇게 졸업 후 일주일이 지나자 어머니는 놀고먹기만 하냐고 매일 채근했고 나 또한 집에 있기가 눈치 보여 시간을 쪼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시절, 신입은 열정페이가 흔했던 터라 며칠 후 일을 관둬도 월급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제 아르바이트하며 1년을 보낸 후 제대로 정착할 일을 구했다. 상설매장의 의류 판매 일이었다. 대리점에서 판매일이 익숙해질 무렵, 함께 일하는 언니가 경력을 쌓으려면 백화점에 가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경력에 따라 월급측정도 다르다고?’


그 말이 솔깃해 나는 망설일 이유도 없이 당장 백화점 판매직을 찾았다.

다행히 금융위기로 지역 백화점이 망하고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터라 일자리는 많았다.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며 결과를 기다리기를 3일. 

드디어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브랜드의 본사 직영 매장이라 연봉제였고 4대 보험은 물론 성과급도 있었다. 다만 신규 입점 브랜드라 자리가 잡히질 않았고 매출도 많아 엄청 힘들다는 것 말고는 괜찮았다. 

    

21살에 들어간 백화점은 휘황찬란했다. 1층에는 각종 명품과 화장품 브랜드로 늘 세련된 향기가 났고 각층 마다 특색있는 브랜드는 고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형형색색이었다. 그리고 VIP 고객이라도 맞이하는 날은 기분 좋게 매출을 올렸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경험하며 나는 세상을 알아갔다. 

백화점 막내에서 시작해 시간이 흘러 아래로 직원 4명이 들어오고 어느 덧 시니어라는 직급도 가지며 경력이 쌓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에 대한 꿈도 꿨다. 

그것이 커다란 건물 안 개구리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아침에 눈 떠 백화점에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내가 제일 잘난 이 마냥 유행을 따르며 받은 월급을 아쉬움 없이 소비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자신감 있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