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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Jan 29. 2023

곤충과의 동거

곤충과의 동거 

5도 2촌의 첫해 곤지암에서의 겨울, 우리 부부는 수 백 마리의 벌레들로부터 침공을 받았다. 무당벌레였다. 겨울이 되자 문틈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 들어왔다. 우리 부부가 집을 비운 주중에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웅크리고 있다가 우리가 도착해서 보일러를 가동해서 집안이 따뜻해지면 활동을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족히 백 마리가 넘는 무당벌레가 방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내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만 산 도시 여자라서 그런지 유독 벌레를 무서워한다. 무서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경기를 하는 정도다. 아내가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기 전에 열심히 무당벌레를 잡아서 변기에 처리해야만 했다. 

마당의 풀을 뽑을 때 지렁이와의 조우는 필연적이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잔디를 가꾸기 때문에 지렁이가 많다. 땅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지렁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낚시 바늘에 꿰어 봤기 때문이다. 무당벌레 수 백 마리를 별 거리낌 없이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텃밭을 유기농으로 가꾸려면 배추 애벌레, 진드기, 무당벌레 등 각종 곤충과 공생을 해야만 한다. 벌레들이 징그럽고 무서우면 전원생활 자체가 어렵다.

곤충의 역사는 인간종의 몇 백만 년 되는 진화사에 비하면 턱없이 길지 않을까 싶다. 곤충 중 일부는 인간이 소중히 여기는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에 있다. 우리는 이들을 해충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인간이 원하지 않는 장소에 자라는 식물을 잡초라고 부르는데 이 모두 인간 위주의 작명이다. 진화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인간은 이들의 역사에 끼어든 종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해로운 동물들이다. 곤충은 인간 이전에 온 지구에 퍼져 번성하여 왔다. 인간이 이 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통제하려고 할 때마다 집요하게 공격하고 저지해 왔다. 이 싸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간은 기술을 발전시켜 해충을 박멸하려 시도했지만 이들은 이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한 예기처럼 인간이 한 발짝 앞서 갔지만 곤충은 이를 다시 따라잡았다. 다시 제자리에서 진화의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곤충들의 독특한 번식 방법, 생활 방식, 생존 전략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웃들보다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친구들을 조그마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면 무서움도 덜 해 지고 재미도 있겠다 싶었다. ‘곤충의 통찰력’과 ‘동물들의 생존 게임’이라는 책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알게 된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배추 애벌레는 왜 배추 잎만 먹을까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는 8월 말에 텃밭에 배추와 무를 심고 나서 싹이 트기 시작하면 바로 모습을 드러낸다. 어린 배춧잎에서는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배추에 속이 들기 시작하면 배추 깊숙이 숨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애벌레의 배설물이 보이면 그 잎 주변을 헤집어서 찾아야만 한다. 생김새를 보면 길쭉하고 마디가 보이고 털이 있어 손으로 집에서 잡기에는 망설여진다. 배추흰나비 애벌레의 가장 특징 중 하나는 배추, 양배추, 케일과 같은 겨잣과 식물의 잎만 먹고 자란다는 점이다. 시험실에서 다른 종류의 잎을 주면 굶어 죽는 편을 택한다고 한다. 한국적인 사고로 치면 절개가 있는 곤충이다. 사군자 중 대나무 정도 되는 듯싶다.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특성에 확실한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도 특정한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면 돈벌이가 수월해진다. 마찬가지로 곤충도 제각각 방어 기제가 다른 식물을 공격하기보다는 특정 식물만의 고유한 특성에 적응함으로써 그 식물에 잘 대체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배추 애벌레가 편식이 심했던 이유는 겨잣과 식물의 방어지재만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생체 시스템만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배추 잎에서 이 애벌레를 떼어 낼 때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 땅에 놓고 젓가락으로 눌러서 처리하 곤 했다. 텃밭 바깥으로 집어던져도 거기서 살지 않고 다시 배추 밭으로 기어 들어 들어올 확률이 100%에 가깝기 때문이다.


진딧물은 어떻게 빠르게 번식할까

텃밭에 진딧물이 출현하면 선택을 해야만 한다. 진딧물이 번지고 있는 채소를 모두 뽑아 버리거나 농약을 쳐야 한다. 진딧물의 진화 상 최고의 장점은 왕성한 번식력이다. 1마리 혼자 수 천 마리로 불어나는 번식력을 가졌다. 순식간에 식물 전체를 덮어 버릴 수 있다. 이 녀석들은 어미만 있다면 정자 없이도 처녀생식으로 번식이 가능하다. 즉 봄에 알이 부화하면 날개가 없는 암컷이 되고 다 자라면 혼자서 새끼를 낳는다. 새끼들이 자라면 어미와 똑 같이 날개 없는 암컷이 된다. 1년에 몇 세대를 이렇게 되풀이해서 번식하므로 기주식물에는 온통 진딧물로 덮이게 된다. 게다가 날개가 있는 개체도 있어 다른 곳으로 금세 퍼져나갈 수 있다. 날개 달린 진딧물은 처녀생식이 아니라 유성생식의 결과물이다. 연말에 가서는 유성생식을 하고 겨울잠에 든다. 세균에 의한 치명적인 채소 질병에는 고추 탄저병이 있다. 해충이 유발하는 작물 피해 중에서는 진딧물을 방제가 가장 어려웠다.


모기는 왜 흡혈귀가 되었을까

곤지암에서는 모기에게 괴롭힘을 별로 받지 않았다. 집 옆에 개울이 있었으나 흐르는 물이어서 그런지 모기의 번식지로 쓰이지 못하지 않았나 추측만 할 뿐이다. 반면에 미르마을에서는 여름에 모기 때문에 문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름에 비가 온 후에 화분 받이에 고인 물속을 들여다보니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가 그득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저수지나 정화조 등에서도 번식을 하고 있는 듯싶었다. 마을에서 모기 민원을 제기하자 지자체에서 모기 방역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긴 했으나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잔디를 깎거나 화단을 정리할 때는 모기의 침이 잘 뚫지 못하는 비닐 계통의 옷을 껴입어야만 했다. 

모기는 사막, 북극의 툰드라, 높이가 4000미터인 산악에서도 산다고 한다. 지상 각지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모기가 이렇게 진화 과정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알, 유충, 번데기, 성충이라는 4단계 완전 변태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이는 유충과 성충이 서로 상이한 진화 경로를 따르도록 해준다. 유충은 섭식과 성장에, 성충은 교미와 산란에 주력한다. 


 보통 모기는 물어도 거의, 혹은 전혀 따끔하지 않다. 모기 바늘이 바느질 용이나 핀보다는 피하 주사침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면도날 모양의 피하 주사침 끝 같은 모기의 침은 무딘 핀처럼 피부를 파열하 듯 찌르는 게 아니라 고통 없이 부드럽게 뚫는다.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두 빨대의 끝이 톱날 모양에 몹시 날카로워서 피부를 부드럽게 자르면서 넘나 든다.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모기의 관에는 두 가지 채널이 가로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넓은 채널을 통해서는 빨아드린 피를 소화계로 이동시키고, 좁은 채널을 통해서는 항응혈제가 포함된 타액을 척추동물 숙주의 몸에 주입한다. 이 화합물이 모기에 물린 사람에게 가려움을 유발한다. 수컷은 확연하게 구분되는 잰 날갯짓 소리로 암컷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인간은 모기 암컷의 날갯짓 소리를 모기가 방안에 침입했다는 경보음으로 인식한다. 모기 채를 집어 들거나 모기약을 분사하여 자그마한 흡혈귀를 처리해야만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된다.


개똥벌레와 반딧불이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수 신형원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개똥벌레는 반딧불이의 유충을 말한다. 대부분의 곤충들이 혐오감을 유발하곤 하지만 여름에 숲과 들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들은 보통 우리의 낭만을 자극한다.

반딧불이는 암컷이 크고 수컷이 조금 작다. 수명은 2주 정도이고 이슬을 먹고 산다. 알을 낳고 11∼13일 뒤에는 자연적으로 죽는다. 어른벌레뿐만 아니라 알, 애벌레, 번데기도 빛을 낸다. 빛을 내는 원리는 루시페린이 루시페라아제에 의해서 산소와 반응해 일어 난다. 빛은 보통 노란색 또는 황록색이며, 파장은 500∼600nm(나노미터)이다. 한국에서는 환경오염 등으로 거의 사라져 쉽게 볼 수 없다. 


자연에 과연 낭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낭만은 인간이 보고 싶은 면만을 보면서 만들어 낸 환상일지 모른다. 그림 현제의 잔혹한 동화와 닮은 구석이 있는 다음 이야기를 읽어 보자.

반딧불이의 암컷과 수컷은 색깔 있는 빛 신호를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빛 신호는 종마다 다르다. 잘못된 짝짓기를 피하기 위하여 종마다 특유의 빛 암호가 개발되었다. 선천적인 종 특유의 감식 신호 말이다. 반딧불이들은 아주 복잡한 한여름 하늘에서 이런 신호에 힘입어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같은 종의 신랑 신부가 만난다. 예를 들면 어떤 종의 수컷들은 비행하면서 5초에 한 번씩 빛 신호를 보낸다. 관심이 있는 같은 종의 암컷들은 수컷의 신호를 수신한 후 2초 정도 기다렸다가 한 번의 신호로 답변한다. 암컷의 경우는 수컷의 신호에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반응하는 가가 어느 종 소속인지, 짝짓기 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수컷들은 깜깜한 밤에 종 특유의 빛 암호를 보내고, 암컷은 종 특유의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번의 깜빡임으로 대답하며 수컷이 암컷이 있는 반짝거리는 방향을 잘 찾아가면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런 짝짓기의 신호를 이용하는 아주 음흉하고 위험한 종이 있다. 그것은 2센티미터에 육박하는 몸집에 색깔이 아주 검은 포트리스 속의 암컷이었다. 이 암컷은 탐욕스럽고 치명적인 유혹 수단으로 거짓된 성 신호를 이용한다. 최대 네 종의 반딧불이들의 신호를 모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암컷은 이 중 어떤 종이 지나가든지 정확히 그 종에 맞게 신호를 조절하고 수컷은 평균 열 마리 중 한 마리 꼴로 이 암컷에게 걸려들어 잡혀 먹혔다. 곤충학자들은 이런 육식 암컷 반딧불이들을 팜므파탈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초롱이라는 반딧불이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는 전문가들 사이에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팜므파탈이 존재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낭만과 형설지공의 이야기를 그냥 지니고 살아도 될 듯싶다. 


주말에 농촌이나 어촌에 가서 산다는 결정은 삶의 방식을 일정 부분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적성에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곤충에 대한 적응성도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다. 곤충이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혐오의 대상이라면 5도 2촌의 생활은 고려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만 곤충들의 습성에 대하여 때때로 공부하고 연구해 보면 의외의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기도 하다. 인간종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왔듯이 곤충의 생활양식, 생김새, 먹이 조달 양식 같은 생물학적 특성들은 모두 진화의 결과물들이다. 전원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곤충을 마냥 배척하기보다는 이해해 보려는 노력 정도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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