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도 2촌을 시작하다
“암이십니다.”
드라마에서나 들었던 얘기를 현실에서 듣게 된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말을 시작으로 고통스럽고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살아야 했던 아내의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기간 내내 아내는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괴로워했다. 나는 나 대로 아내의 간호와, 당시 고3인 딸과 고1인 아들의 뒷바라지와, 가사와 회사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4 중고를 견디어 내야 했다. 아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는 회사에 출근하여 일을 본 후 병원으로 퇴근하여 아내와 같이 있었다. 병원에서 쪽 잠을 잔 후에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으로 가서 애들 챙겨서 학교에 보냈다. 그다음에 간단한 가사를 하고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기도 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내의 항암 치료가 끝나자 우리 부부는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이를 통하여 회사와 애들 위주의 삶에서 벗어나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이 변화는 내가 회사 일을 계속하면서도 아내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며, 우리 부부가 같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부부가 실행에 옮긴 것이 바로 5도 2촌(5都2村)의 삶, 즉 주중 5일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주말 이틀은 시골에서 생활하는 방식이었다.
5도 2촌의 삶을 시작한 동기는 가족적인 이유 외에도 내 개인적인 고민도 많았기 때문이다. 2010년 초 나는 회사에 입사하여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을 장기 근속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정체되어 있고 창의성과 열정이 점점 증발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주어진 일을 해결하느라 바쁘게 움직였을 뿐 새로운 시도나 생각을 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바쁘면 진다는 말이 있다. 머리가 꽉 차 있으면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신선한 감성과 색다른 생각을 흡수하려면 먼저 머리를 비우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면서 월급만 꼬박꼬박 받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무언가 전기가 필요했었다.
나는 실향민이다. 월남을 하지도 않았고, 고향이 수몰되지도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안에 내 고향이 포함되어 있었다.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합강리, 내 본적이다. 아버지는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진영에 서서 투쟁을 해 보았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세종시 안으로 새로 집을 지어 이사를 하셨다.
5도 2촌을 시작하고 나서 고향에 내려가 본 적이 있다. 나무와 풀들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던 고향집은 사라지고 없었다. 흉흉한 집터만 남아 있었다. 포클레인이 할퀴고 간 내 그리움의 심장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요즘도 고향에 대한 꿈을 꾼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걸어가 던 길을 내 무의식이 그대로 쫓아가곤 한다. 숨을 멎게 하는 듯한 그리움이 내 가슴을 저민다. 나의 전원생활에 대한 욕구는 묻혀버린 고향의 샘에서 쉼 없이 분출되었다.
전원생활을 할 장소를 물색하면서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는 고향의 정취를 풍기는 장소임을 뒤늦게 알았다. 참나무가 우거진 장소, 가을에 밤을 주울 수 있는 곳, 탁 트인 전경보다는 집 앞에 나지막한 산이 보이는 곳, 자그마한 개울이 흐르는 곳. 곤지암 연곡리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연곡리에서 2년을 전세로 살았다. 이후에는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용인시 미르마을에 집을 구매하고 여기서 5년을 더 살았다.
집을 구하기 위하여 김포, 강화도, 파주, 양평, 퇴촌 광주, 오포 등 수도권 전원주택 단지가 형성된 곳을 누비고 다녔다. 1년 넘게 시간을 투자했다. 미술이건, 물건이건, 집이건 간에 많이 보면 일정 수준의 안목이 형성된다. 1장에는 발 품을 팔아 쌓은 땅을 보는 방법, 집을 고르는 기준을 담았다.
살 집을 장만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텃밭을 가꾸고, 사람들 초대해서 바비큐 하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단순한 생각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52주 주말 이틀을 오롯이 전원생활에 쓰게 되면 남는 시간이 애초의 생각했던 훨씬 많다. 그 집에서 무엇을 할지, 어떤 삶을 살아 낼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5도 2촌의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유나 목적은 제각각 이겠지만, 실행에 옮기기 전에 아래 사항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권하고 싶다.
1. 부부가 모두 진정으로 전원생활을 원하는가?
2. 각종 곤충과의 동거를 할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가?
3. 풀과의 전쟁을 치를 체력은 비축되어 있는가?
4.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한 대책은 마련했는가?
5. 재무적인 어려움은 없는가?
마지막으로 놀 준비는 되어있는지를 자문해 봐야 한다. 전원에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으면 여러 가지 여가 기술을 배워서 연마해 두면 좋다. 물론 전원생활을 하면서 배울 수도 있다. 취미가 하나라도 있는 사람들은 잘 안다. 취미 생활의 만족도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동호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만족도가 높아짐을. 1년에 100일이나 되는 주말을 한 두 가지 활동으로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취미에도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이유다. 텃밭 가꾸기, 오디오, 음악, 목공, 정원 가꾸기, 커피 내리기 등은 내가 5도 2촌의 생활에서 채운 삶의 부분들이다. 은퇴 전에 연마해서 재미를 붙인 취미 활동들은 노후 자금 마련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노후 대비책이 된다. 은퇴 이후에는 수면 시간을 제외한 시간 모두가 노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사항들에 대하여 우리 부부는 어떻게 판단하고 실행했는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