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경심전 Feb 06. 2023

대형 음악실에 대한 로망 실현

미르마을 거실에 오디오를 설치하다

오디오 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곤지암에서는 재생 음악과 자연의 소리의 교감에 중점을 두고 음악을 들었다. 미르마을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에 있는 오디오 시스템도 옮겨왔다. 서울에서 추구해 보지 못한, 아니 추구하고자 하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로망을 실현해 보고자 했다.

여기서 잠깐, 독자들에게 오디오에 관한 퀴즈를 하나 내 보도록 하겠다. 오디오 소리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스피커나 앰프 같은 오디오 기기 
 2. 공간이나 전기 같은 환경
 3. CD나 엘피 같은 음반

대답은 1번이 가장 많을 수 있으나 오디오 마니아들은 환경이라는 답에 대부분 수긍을 한다. 어떤 마니아들은 첫째도 환경, 둘째도 환경이라고 한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소리를 내는 원천으로부터 30%, 벽이나 바닥에 부딪치고 반사되어 돌아오는 간접음이 70%를 차지한다. 콘서트 홀의 음향 수준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로 간접음을 어떻게 잘 통제해서 이상적인 음향 공간을 만들어 내는지 여부다. 

아파트 방이 오디오 룸인 경우, 공간이 좁아서 간접음 처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물론 층간 소음의 우려로 볼륨을 일정 수준 이상 올릴 수 없다. 내가 방문했던 오디오 동호인들 중 절반 이상이 이 문제를 안고 취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책장이나 커튼 등으로 룸 튜닝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거실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 공간은 넓어지는 장점은 있으나 룸 튜닝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베란다 쪽은 막혀 있고, 부엌 쪽은 트여 있어 음의 균형이 깨질 확률이 높다.  
 

헝가리에서의 공간에 대한 경험
 
공간은 좁아도 문제이고 너무 넓어도 문제다. 2013년 헝가리 출장을 갔었다. 업무에 몰두하다 모처럼 얻은 일요일 오전 휴식 시간에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들린 곳이 성 이슈트반 버질리카(Szent Istvan-bazilika) 성당이다. 이 성당은 커다란 돔과 두 개의 탑을 가지고 있으며 명실공히 부다페스트 제1의 성당이라고 불리 운다. 이 안에서 콘서트가 열린다고 해서 표를 샀다. 내가 이 연주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연주 자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성당 안에서의 실내악 연주가 어떤 음향적 울림을 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오후 8시, Duna String Orchestra라는 명칭을 가진 7명의 단원들이 입장하고 연주가 시작했다. 연주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명확해지지 시작했다. 일반 콘서트 홀과 차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두 공간의 울림의 차이는 생각 이상이었다. 악단 크기에 비하여 성당 안 부피가 너무 커서 반사음에 의한 효과가 반감되고 있었다. 이때 경험을 통하여 공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공간과 소리를 내는 음원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실내 악단은 대형 콘서트 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날 공연은 악단의 규모와 공간의 크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전형적인 예였다.

 
 용인집 거실
 용인집의 거실은 이층이 트여 있다. 쉽게 말하면 40평 아파트 거실이 위쪽으로 2배 확장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서울집 살림의 70% 정도를 용인 집으로 옮겼다. 이삿짐 정리가 끝나고 거실에 오디오를 세팅했다. 전선들이 제대로 연결됐는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전원을 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기대도 한 컷 부풀어 있다. 3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넓은 공간에서의 대음량으로 음악을 들어보는 대망의 순간이다. 익숙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라이브 음반을 틀었다. 아파트에서는 제대로 된 음을 듣기 어려운 곡 중 하나다. 프리 앰프의 볼륨을 12시까지 올렸다. 서울에서는 9시 정도도 이웃이 신경 쓰이는 볼륨 수준이다. 드럼의 파동이 가슴을 울린다. 대학 시절 디스코텍에서 느꼈던 바로 그 울림이다. 관객들의 환호 소리로 느껴지는 공연장의 크기는 서울에서 보다 몇 배는 넓어진 듯한 느낌이다. 관객들의 열기가 생동감 있게 전달되어 내가 공연장 안에 있는 듯한 환각에 빠져들었다. 시간을 가지고 서울에서 익숙한 음반들을 들어 보았다. 공통적으로 다른 음반을 듣는 듯했다. 정보량이 풍부해졌고 음이 역동적으로 변화되었다. 오디오가 재생하는 소리에서 사람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소는 풍성한 저역도 아니고 질감이나 선명도도 아니다. 바로 음량이다. 음량이 커지면 소리가 좋아졌다고 느낀다.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자 한다면 라이브 현장 음량이 아니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음량으로 들으면 된다. 음량이 커지면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고 음장이 넓어지는 듯 느껴진다.


이웃집에서의 항의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 분쟁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오디오 볼륨을 올리는 마음을 소심하게 만든다. 이런 족쇄에서 벗어나 한 동안 억눌렸던 욕구를 마음껏 발산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 일이 발생했다.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주변의 집에서 시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앞집은 40미터나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이 집이 시끄러울 정도로 내가 볼륨을 크게 한 모양이다. 마당 끝 앞집에 최대한 다가가서 들어보니 항의를 받을 만했다. 곤지암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놔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민들이 지나다니면서 들으니 좋다고 했다. 주민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다음부터는 대음량으로 들을 때 거실 창문을 받아야 했다. 마을 잔치 때 앞집에 사과를 했다. 오히려 이웃분이 미안해하셨다. 다시 거실 창문을 열고 마당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넓은 공간에서 대음량으로 음악을 듣고자 한 욕구는 전원생활이 아니면 해소하기 쉽지 않다. 용인에서의 5도 2촌의 생활을 통하여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를 지울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와 엘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