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살아남기 ep.0
나를 움직이게 한 건 언제나 불안이었다.
시험을 잘 봐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공부를 안 하고 있는 순간들이 불안했었고,
가고 싶었던 과는 없었지만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에 입학해
대학생이 되어서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순간들이 불안했다.
너는 나중에 뭐 할 거야?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던 친구들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런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은 3학년이 되자
하나둘씩 학회를 하고,
인턴을 하고,
로스쿨, CPA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순리에 따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게 없을 때는
남들 다 하는 걸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었으니까.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할 수 있는 걸 모조리 했다.
허투루 보낸 공강시간이 없었다.
어딘가에 앉아서 뭐라도 찾고 뭐라도 쓰고
뭐라도 읽었다.
뒤쳐지는 게 불안했다.
돌아보면 하나도 뒤처지지 않았었는데,
대학교에서 더 이상 내게 소속감을 주지 않을 미래가
너무 불안했나 보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런 아등바등함을 알아본 누군가에 의해
대기업 채용연계형 인턴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다.
인생 첫 회사 면접이었다.
후회 없이 준비했다고 할 정도로
모든 시간을 면접준비에 쏟았다.
벌써 2년 전이지만,
그때의 기억과 간절함이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대기업에 들어가기에는
나의 정량적인 스펙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을.
교환학생, 학점관리, 영어점수,
약간의 대외활동,
누구나 다 있는 컴활 자격증 1개 이게 다였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당시 내가 쓴 일기다.
"다시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나의 노력이 부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다 좋은 경험일 것이라 애써 위로하는 말들은
혼자 해내야 했던 그 순간을 다 덮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일주일 뒤 결과가 나왔고,
강의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온 메일에는
당연하게도 불합격이라고 쓰여있었다.
눈물이 안 날 줄 알았는데
기숙사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눈이 뻘게지도록 엉엉 울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느낌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졌을 때에도
가만히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누군가 '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다시 다짐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썼다.
물론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처럼
내가 조금 더 준비를 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후회는 감정소모 이외에
생산적인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한다.
앞으로는,
일단 하자.
뭐라도 해야 뭐라도 되니까.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새로운 기회가 분명 찾아올 것이고,
이 모든 것들을 단단한 기둥 삼아
나는 분명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얻어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불안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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