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역 May 05. 2024

꽃길 따라 삼백리

주중보다 주말이면 몸과 마음은 바빠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천변에 나가 시냇물 소리와 새소를 들으며 걷다 보면  발걸음은 절로 빨라진다.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이라 대기와 주변 사위는 고요하다.


천변에는 나처럼 산책하러 나온 사람도 있고 가볍게 달리사람도 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천변을 걷다가 다리 밑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거주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손주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주중에 세종에서 카톡으로만 보다가 주말에는 손주를 직접 만나러 서울로 올라간다. 주말마다 손주를 만나온지도 그럭저럭 팔 개월이 되어간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서울 집에 가져갈 물건을 챙겨 주차창으로 내려갔다. 차의 시동을 켜고 내비게이션에서 가야 할 목적지를 눌렀다. 잠시 후 내비게이션이 작동하면서 세종에서 서울까지 120킬로라는 표시가 떴다.


차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세종 시내를 지나가는데 도로변에 하얗게 핀 이팝나무꽃이 눈에 들어왔다. 세종 시내를 빠져나가 정안 IC까지 가는데 산자락에 아카시아꽃이 핀 모습이 바라보였다.


정안 IC를 빠져나가 천안논산고속로에 들어서자 이팝나무와 아카시아꽃이 도로와 도로 주변에 꽃대궐을 이루었다.


흰색과 분홍색의 차이는 소박함과 화려함이다. 흰색은 꽃이 흐드러지게 펴도 요란하지 않고 영산홍처럼 분홍색의 꽃은 화려하고 요란스럽다.


천안에서 경부고속로로 갈아타자 입구에서 아카시아꽃이 반겨준다.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다. 아카시아꽃이 끝나면 이팝나무꽃이 나오고 이팝나무꽃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카시아꽃이 나온다.


아침에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이팝나무꽃과 아카시아꽃이 번갈아 나오더니 서울 송파 집에 다다르자 마무리로 흐드러지게 매달린 이팝나무꽃이 고생했다며 반겨준다.


오늘은 세종에서 서울까지 삼백리 길을 꽃길을 밟으며 올라왔다. 누군가 일부러 심어 놓은 듯이 이팝나무와 아카시아 꽃을 깔아놓고 손주 보러 가는 길을 축복이라도 해 주는 것 같다.


손주도 오늘 달려온 삼백리 꽃길처럼 인생의 꽃길만 걸어가기를 소원한다. 서울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딸네 집에 가져갈 반찬을 만드느냐 비지땀을 흘리며 준비하고 있다.


아내가 반찬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이것저것 챙겨 들고 아내와 함께 차를 운전해서 딸네 집으로 향했다. 딸네 아파트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딸이 손주가 자고 있으니 조용조용 들어오란다.


얼마 후 손주가 깨서 제 방을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러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마주치는 얼굴마다 한 번씩 방긋방긋 웃어준다. 이 맛에 몸은 힘들어도 삼백리길을 올라와 손주를 보러 온다.


손주가 해맑게 방긋 웃어주면 몸의 피로가 저절로 녹아내린다. 밥때가 되어 손주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안아주다 움직임을 살펴보니 잠을 잘 때가 된 것 같다.


손주를 아기 띠로 가슴에 안고 바깥으로 나오자 십 분도 되지 않아 잠을 잔다. 아파트 단지 내 그늘진 곳을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손주를 재우는데 한 사십 분 정도 지나자 손주가 잠을 깼다.


손주를 가슴에 안고 아파트 단지를 걸어 다니면 품 안에는 손주가 아닌 딸을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손주와 딸의 엇갈린 기억 속에 단지를 걸어 다니다 보면 행복한 기운이 마구 샘솟는다.


그런 기분에 힘든지도 모르고 한 시간 정도 단지를 돌아다니다가 딸네 집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이래저래 현실과 과거의 기억 속에 착각하며 살아가는가 보다.


오늘 세종에서 서울까지 삼백리 길에 하얀 꽃가루를 뿌려 놓은 것은 내게 손주를 보살피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라는 축복의 길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의 기쁨을 누리도록 베풀어준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

작가의 이전글 영평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