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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y 03. 2024

영평사

서울과 과천에 분산되어 있던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직장을 따라 같이 내려왔다. 이곳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세종에는 어디 가서 구경할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세종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와 함께 베어트리파크, 호수공원, 김종서 장군 묘, 금강수목원, 동학사, 마곡사 등 가볼 만한 곳을 하나둘씩 찾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장군면에 구절초로 유명한 영평사가 자리한 것을 알게 되어 아내와 함께 찾아갔는데 산사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가람은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소박한 절집이었다.


영평사란 이름은 대중이 한 번 다녀가거나 절 이름을 듣거나 생각만 해도 불멸의 행복을 얻고, 절에 사는 미물과 공중을 지나가는 날짐승도 평안을 얻는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담아 명명했다고 한다.


내가 절집을 찾아가는 이유는 마음이 편안해서다. 마치 고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절집을 찾아갈 때면 따뜻한 느낌이 든다. 절집에 간다고 딱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산사의 절집을 찾아가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직장에서 물러난 뒤 다시 세종에 내려와 중개사협회 일을 도와주고 있다. 어제는 근로자의 날을 맞아 아내가 세종으로 내려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영평사를 보러 갔다.


오월의 영평사는 평안을 얻으라는 절 이름과는 달리 전보다 쓸쓸해 보였다. 아내는 이전에 찾아왔을 때는 몸이 좋지 않아 힘들었는데 몸이 나아지고 영평사에 오니 초록으로 물든 산자락이 새롭다며 좋아했다.


영평사는 가을에 구절초꽃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데 오월의 영평사는 찾아오는 사람도 적고 구절초가 피지 않아 황토색 흙이 드러나서 그런지 황량한 기운만 물씬 풍겼다.


직장에 근무하던 시절 영평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 찾아왔다. 영평사가 구절초꽃의 대명사는 아니지만 밤이 익어가는 가을이면 산사를 지나 산속에 올라가면 도토리나 알밤도 줍는다.


십여 년이 지나 영평사에 도착해서 대웅전 앞마당에 서자 만감이 교차했다. 대웅전 옆 아미타대불은 여전히 인자한 모습으로 산사를 찾아오는 사람을 반겨주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미타대불은 중생이 일찍이 무량수 무량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여 삶을 괴롭게만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아미타대불의 본원을 알려 이 땅에 정토를 실현함에 있어 영평사를 근본도량으로 삼고자 원력으로 봉안한 것이다


산사에 자리한 절집은 생각 없이 바라보면 그냥 절집일 뿐이다. 불교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하 않고 지긋이 대웅전을 바라보자 인생은 참 무상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청춘 시절에 온 세상은 모든 것이 젊게만 바라보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눈앞에 보이는 세상도 같이 늙어가는 것처럼 쓸쓸하고 처량하게 다가온다.


세종에 살면서 아내와 구절초꽃을 보기 위해 종종 영평사를 찾아왔는데 구절초를 만날 수 없게 되자 모든 것이 그저 그렇고 그런 절집의 모습이다.


영평사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저 그런 눈으로 바라보인다. 영평사의 청춘 시절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석가모니 탄신일이나 구절초가 꽃을 피우는 계절이 아닐까.


오월의 신록은 마냥 푸르른데 철쭉과 영산홍과 벚꽃이 진 영평사와 주변은 화무십일홍처럼 초록의 신록이란 물결에 갇혀 밀물에 떠내려 간 섬처럼 계절의 흥취에서 저만치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이 세상 어느 곳이나 사람이 찾아올 때는 흥청흥청하고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곳은 쓸쓸하게 보인다. 따지고 보면 인연도 시절도 그리움도 쓸쓸함도 사람에 의해 탄생되고 사람에 따라 사라진다.


영평사 대웅전 옆에 선 아미타대불에게 두 손 모아 합장을 드리고 아내와 함께 뒷산으로 올라가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화려한 꽃잎이 진 색 바랜 나무처럼 영평사도 세상 속에 시들어가는 절집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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