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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y 11. 2024

무료한 날에

오늘은 종일토록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사무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고 오월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버겁기만 하다.


무슨 일이든 진행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나는 것도 없고 글의 주제를 잡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은데 떠오르는 단어도 없고 손가락의 힘은 늘어져만 가서 컴퓨터의 빈 화면만 웅크리고 앉아 응시하는 중이다.


오늘 같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슴은 답답하고 머릿속은 공명이 울릴 정도로 텅 비어간다. 시간은 하염없이 오월의 햇살을 향해 달려가고 마음은 햇빛에 반사되어 다른 유리창으로 날아간다.


오월의 커다란 행사인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도 그럭저럭 지나갔다. 그리고 듬성듬성 내리던 빗물도 그쳤다. 오늘 같이 무료한 날에는 재래시장에 가서 사람들 무리 속에 들어가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보고 싶다


하지만 주변에 재래시장마저 없는 곳이라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뿐이다. 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가는 시간 앞에 버틸 수 있는 체력도 힘도 점점 소진되어 간다.


이런 날에는 몽당연필이나 손에 움켜쥐고 쓰지는 못하는 시나 끄적거려 보고 싶다. 시를 쓰지 못해서 끙끙거리다 보면 시간이나 빠르게 흘러갈 것만 같다.


못 쓰는 시를 쓴다고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겠지만 몽당연필을 들고 시를 짓는 흉내라도 내면 머리도 아프고 마음의 허전함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책이라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려는데 영 속도가 붙지를 않는다.


책을 읽는 것도 흥미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책이 아니라서 책을 오래도록 붙잡지 못하고 금방금방 내려놓게 된다. 오늘따라 시간이 마디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더디게만 흘러간다.


아내의 눈이 좋지 않아 수술하고 간호 좀 해주려고 세종이 아닌 서울에 올라가 출퇴근하면서 돌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없던 일이 되었다. 세상사 무슨 일이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다반사다.


내가 만든 회사가 아니라서 어디다 대고 하소연할 데도 없고 무어라고 쓴소리도 할 데가 없다. 그런 오월의 하늘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빛과 힘을 점점 잃어가는 것만 같다.


그늘진 마음에 맑은 햇살을 깃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의 무기력한 그늘을 벗어나는 것도 맑은 햇살을 맞이하는 것도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세상살이다.


요즈음 마주하는 모든 것에서 빛과 힘을 점점 잃어간다. 오월은 푸르른 녹색의 기운을 받아 마음의 빛과 힘을 회복해야 하는 계절인데 부딪치고 마주하는 것에서 힘을 잃으니 자연스럽게 빛도 잃게 된다.


세상의 일이란 사선에 올라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무언가 일이 될 듯하다 되지 않는 방향으로 거거나 일이 되지 않을 듯하다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면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어떤 날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가도 자연스럽게 일이 풀리며 성사되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자신감을 갖고 가서 일을 완성하려고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벽을 만나 성사되지 않는 날이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인생사에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의 일은 일 분 뒤에 발생하는 일을 예측할 수 없듯이 인생은 그때그때 무시로 변하는 변화무쌍한 무대란 생각이 든다.


오늘처럼 무료한 날이 찾아오면 기분을 전환하고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무료하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이고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무능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월도 벌써 세 번째 주에 접어들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구분하지 못하고 시간만 태워버리게 된다.


오늘이란 순간이 사라지면 내일은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구상해서 남은 오월을 보내야 한다. 오늘처럼 무료한 마음은 빗물에 흘려보내고 마음을 곧추 세워 오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생의 한가운데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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