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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y 28. 2024

가는 오월의 아쉬움

싱그러운 아침 햇살

풀잎에 맺힌 초롱초롱 이슬방울은

내 마음에 창이 되어 살포시 다가오고


새벽이슬 가슴에 품은

빨간 장미의 향기는

하루의 시작을 가슴 설레게 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꽃이 진다고 아쉽다 했던가


무엇이 그리 아쉬운가

오월의 푸르름이 이렇게 반겨주는걸(김수용, '오월의 아침')


지난 일요일 오후에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세종으로 내려오는데 평택부터 비가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차 앞 유리창이 뿌옇게 될 정도로 비가 내려서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 고속도로 운전이 두려운 것은 버스가 지나칠 때마다 벼락같은 물을 유리창으로 튕겨낼 때다. 버스가 달려가면서 빗물을 유리창에 튕겨내면 물에 갇힌 것처럼 잠시 동안 앞이 보이 지를 않는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꽉 잡고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 고속도로 운전은 위험하고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두렵고 무서워진다.


일요일에 가슴 졸이며 장맛비를 뚫고 운전하고 내려와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이 되자 언제 장맛비내렸냐는 듯이 오월의 하늘은 청명하게 높고 신록은 푸르름을 더해간다.


시인이 시를 지은 것도 오월에 비가 온 다음 날 오월의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신록을 바라보며 시를 노래한 것 같다. 비가 오고 난 뒤 오월의 하늘은 쪽빛에 신록이 마냥 푸르기만 간다.


일요일만 해도 가는 오월이 두렵고 무서웠는데 이튿날이 되자 가는 오월이 새롭고 경이로운 푸릇한 새싹처럼 설렘의 계절로 다가온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자연이 스스로 빗물을 거두고 맑은 하늘과 푸른 신록을 드러내자 사람의 마음도 자연을 따라 저절로 변하게 된다.


오월의 장미는 더욱 붉게 바라보이고 아침 햇살은 따뜻하게 다가온다. 들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천변에서 불어오는 선들바람이 몸을 휘감으니 오월의 시간이 따사롭기만 하다.


시인의 말처럼 오월의 하늘이 푸르고 신록이 선명한데 무엇이 그리 아쉬운 것일까. 오월의 진한 푸르름이 반겨주고 하늘이 끝없이 열려 있는데 두렵고 아쉬울 것 하나 없는 계절이다.


오월은 비가 내리면 내릴수록 신록이 푸르고 싱그러워 계절의 여왕이자 위대한 계절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천변을 걸어오는데 바라보는 모두가 녹색이요 꽃이요 생명이다.


그렇게 가는 오월도 이제 얼마 남지를 않았다. 가는 오월이 아쉽고 서운해서 지난 일요일에장맛비를 그리도 많이 쏟아내며 서러워했던 것인가.


가는 오월이 장맛비와 함께 쏟아져 내리면서 어딘가로 뭉텅뭉텅 휩쓸려갔다는 생각이 든다. 푸르른 오월이 와서 좋아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는 오월과 사라져 가는 봄날을 아쉬워해야 하는 시절이다.


가고 오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가고 오는 것 모두 삶이듯이 가는 오월과 다가오는 유월도 인생의 과정이다.


가는 오월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시간이 두렵고 아쉽기만 하다. 오늘의 시간이 지나면 내일이란 시간이 다가오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내일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 아니던가.


사람의 변화무쌍한 마음처럼 계절도 수시로 바뀌고 여우처럼 마음을 바꾸면서 다가오고 지나간다. 그중에 오월의 장맛비는 얄밉고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이번 주가 지나가면 다음 주부터 유월이 시작된다. 유월이 온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없지만 유월이 되면 무언가 찾아 나서고 싶고 나를 위해 무언가 열심히 노력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기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다가오는 유월에는 더 많은 것을 누리고 향유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유월의 변덕스러운 계절의 유혹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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