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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생명

by 이상역

오늘 아침에 구봉산을 올라가는데 산자락에 핀 하얀 벚꽃이 연두색과 어울려 수채화그려간다. 겨우내 쓸쓸하던 나뭇가지에서 꽃과 새싹이 자라나서 산자락 어디나 멋진 그림이 따로 없다.


그런 산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노라면 숲에서 싱그러움과 충만함이 느껴지고 저 멀리서 펼쳐지는 자연의 수채화를 스케치하는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자연은 저와 같이 때가 되면 생명의 축제인 꽃과 신록의 향연을 펼치는데 사람인 나는 자연에 보태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산을 오르며 거친 들숨날숨으로 대기에 이산화탄소나 배출하며 피해만 끼치는 신세다.


아무리 유명한 화가라도 자연에서 펼쳐 치는 생명의 향연은 그릴 수가 없을 것이다. 자연은 그 누구의 보살핌이나 보호가 없어도 때가 되면 피어나고 때가 되면 스러지며 순환한다.


그런데 사람은 자연이 순환하는 모습을 보며 그저 눈으로 바라보거나 지나가기만 할 뿐 도움도 보살핌도 베풀어 줄 수 없다. 꽃과 연두의 새싹이 탄생하는 사월은 하루하루가 새롭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자연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고 색깔이 변한다. 그에 따라 사월은 온갖 생명이 춤을 추고 축제의 향연을 벌인다.


승상산 등산을 마치고 다시 구봉산 언덕에 올라서서 시내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교차로에서 한 차선은 차나 사람이 대기하고 있고, 다른 차선에서는 차나 사람이나 어딘가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거나 걸어가기 바쁘다.


내가 선 산자락이나 도로가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은 그 자리를 지키고, 사람이나 차는 그저 지나가는 과객으로 바라보인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그 자리를 지나간다.


마치 유행가의 가사처럼 자리를 지키는 자는 누구이고 자리를 지나가는 자는 누구인가. 차의 흐름과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지나가기 바쁘고, 도로변의 나무와 풀은 그 자리를 지켜 내기에 바쁘기만 하다.


사람도 순환하는 삶을 산다지만 사는 동안에는 그저 열심히 지나가는 삶을 위해 살다가 죽어서야 지나가는 행위를 멈추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자연은 사는 동안 평생을 한 자리에서 순환하며 마감한다.


결국에 산자락에서 펼쳐지는 수채화는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자 생명의 순환을 알리는 신호수인 샘이다. 그런 자연의 치열한 모습이 사람에게 아름다운 수채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자연은 매일같이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자연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처럼 자연도 아름답게 바라보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때가 되어 시절을 만나면 순환한다. 생명의 순환은 그 누가 가르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묵시적인 질서다.


내가 아침마다 구봉산과 승상산을 올라가는 것도 자연의 순환이고 이렇게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순환의 일부분이다. 그런 부분들이 모여 자연의 질서를 이루고 지구라는 울타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매일같이 수채화를 그려가는 산자락과 덤불숲을 바라볼 때마다 알 수 없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갓 태어난 아기가 귀엽듯이 갓 태어난 온갖 물상을 바라보는 것도 귀엽고 신비스럽다.


아침마다 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가슴은 저절로 부풀어 오른다. 오늘은 자연이 주는 생명의 싱그러움을 전달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마음에 얼마만큼의 충만감을 불어넣어 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간다.


생명의 달 사월은 자연을 마주하거나 만나는 모든 것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중에 제일은 내가 살아가는 삶도 순환하는 생명의 일부이고 언젠가 그 순환하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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