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에 사는 여동생들과 고향에 봄나물을 뜯으러 갔다. 봄나물을 뜯으러 간 것이 아니라 고향의 산자락을 돌아다니며 봄을 꺾으로 간 것이 맞을 듯하다.
누님과 여동생들과 고향의 산자락을 누비며 봄나물을 뜯거나 채취하는 것은 힘은 들지만 기분은 좋다. 고향에 도착해서 누님과 여동생은 나물을 뜯으러 앞산으로 올라가고, 나는 두릅순과 고사리와 쑥을 채취하러 갔다.
올해는 봄날씨가 변덕을 부려 두릅순이 이제야 채취하기에 적당하다. 식목일 전에 두릅순을 따러 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제 때에 찾아온 것 같다.
먼저 아버지 산소 위에 올라가 두릅순을 따고 산소 옆 어머니가 관리하는 고사리밭에서 고사리를 꺾었다. 어머니가 관리하는 것인데 누군가가 고사리를 꺾어간 것인지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 있다.
고사리밭에서 고사리를 꺾고 개울 건너 장터밭 옆에 가서 두릅나무를 살펴보니 두릅나무를 관리하지 않아 거의 고사되어 있다. 밭 옆에 자라는 두릅나무를 찾아다니며 두릅순을 땄다.
그리고 장터밭을 나와 지난번에 올라갔던 향골로 향했다. 향골은 빈 몸으로 올라가기도 힘들다. 아침을 먹고 왔는데도 비탈진 길을 걸어가는데 허기가 느껴진다.
향골에 가보니 그곳도 두릅나무가 절반이 죽었다. 향골은 마을보다 양달인에도 두릅순이 별로 자라지 않았다. 두릅순 딴 것을 모아보니 그런대로 네 가족이 맛보기 할 정도는 된 것 같다.
향골에서 내려와 누님집에 두릅순을 그늘진 곳에 두고 이번에는 낫과 대소쿠리를 들고 쑥을 뜯으러 마당바위 앞 개울가로 올라갔다.
지난해 그곳에서 쑥을 한 자루로 뜯었는데 여름 장마에 인해 쑥이 떠내려간 것인지 올해는 대소쿠리 하나 채울 정도 양만 뜯었다.
오전에 두릅순과 쑥을 뜯고 나니 배꼽이 신호를 보낸다. 산에 올라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이나 먹고 오후에 다시 뜯자고 하니 산을 내려와서 점심을 차렸다.
누님집에서 남매가 모여 점심을 먹었다.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런지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누님과 여동생은 다시 앞산으로 올라가고 나는 차를 몰고 남산으로 갔다.
은적골에 누님이 농사짓는 밭 옆에 두릅나무가 몇 그루 자란다고 해서 두릅순도 따고 밭에서 자라는 쑥을 뜯으러 간 것이다. 은적골에는 부모님이 결혼 후 남산골에서 농사짓던 논이 있다.
고향에서 은적골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차도 경운기도 없던 시절 아버지를 따라 다랭이논의 풀도 베고 가을에 추수한 벼를 지게에 지고 고개를 너머 남산을 거쳐 내려오던 기억이 난다.
은적골 골짜기에 들어서면 사석의 문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릅나무가 자라는 곳에 가서 두릅순을 따고 밭 가장자리에서 쑥을 뜯는데 아버지가 생전에 쟁기로 논을 갈면서 "이랴 이랴", "훠이, 이놈의 소가" 하시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는 듯하다.
은적골에서 뜯은 두릅순과 쑥을 바구니에 들고 남산으로 터벅터벅 걸어 내려와 싣고 차를 몰고 누님집으로 내려왔다. 누님집에 오자 여동생이 뒤늦게 와서 같이 앞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올라갔다.
고향의 산자락은 사람들의 출입이 없어지면서 무성해졌다. 무성한 숲을 올라가려면 나무와 풀숲을 헤치며 가야 한다.
사실 나는 두릅이나 고사리 등을 제외한 산나물은 잘 알지 못한다. 산나물 이름도 종류도 알지 못해서 여동생이 나물을 가리키며 뜯으라고 하면 뜯는 수준이다.
그렇게 산나물을 뜯으며 한참을 올라가자 먼저 올라간 누님과 여동생을 만났다. 넷이서 산나물을 뜯은 양을 보니 네 가족이 그럭저럭 먹을 양은 된 것 같고 저녁 시간이 되어 산을 내려왔다.
누님집에 내려와 산에서 뜯어온 나물을 손질하다 저녁을 먹었다. 마침 어머님도 주간보호센터에서 귀가해서 찾아오셨다.
어머님과 누님과 여동생들이 모여 저녁 늦게까지 고향에서 보낸 시절과 추억을 소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도 기분이 좋으신지 다음에 언제 또 만날 수 있느냐며 연신 물어보셨다.
이튿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고사리밭에 올라가 고사리를 한 자루 꺾어왔다. 고사리는 하룻밤만 자고 나도 쑥쑥 자란다.
어제도 고사리를 꺾어 갔는데 아침에 올라가서 꺾는데도 고사리가 많이 나왔다. 누님집에 내려와 고사리를 내려놓자 텃밭에 가서 파를 뽑아 오자고 한다.
텃밭에 가서 누님과 대소쿠리로 한가득 파를 뽑아와서 다섯이 다듬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파절임을 하고 두릅순을 정리하고 고사리도 손질해서 가족별로 나물과 파절임 등을 나누어 보니 가져갈 짐이 산더미다.
모처럼 고향의 산자락에 올라가서 봄을 꺾었다. 길상산이 빙 둘러싼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하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만나 지난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누님과 여동생들과는 세상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고 마음도 풍성해졌다.
고향을 떠나오며 어머니에게 몸조리 잘하시라며 손을 흔들려니 마음이 짠해진다. 고향은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자리가 되면 늘 애달프고 서글퍼진다.
내가 어머니에게 해드릴 것도 별로 없는데 차의 운전대만 잡으면 눈물이 솟구친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이별의 눈물이 더해지며 어머니의 모습이 차츰차츰 백미러에서 밀려나 멀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