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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의 축제

by 이상역

동심은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장년이 되고 보니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을 간직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그 시절은 고향의 동구를 떠나오면서 잊고 지낸 것 같다.


동심의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성암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섰지만 마음은 초등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지지 않고 현재라는 세속의 시간에 휘말려 동심을 강하게 밀어낸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을 초청하여 동심의 축제를 가졌다. 그간 초등학교는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바라보기만 했을 뿐 오늘처럼 학교를 찾아가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를 지나가다 한 번쯤 초등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생활기록부라도 보면서 그 시절을 회상해 볼만도 한데 그럴 시간과 좀처럼 여유가 나지 않아 지나치기만 다.


동심의 축제는 거창하게 1부와 2부로 나누었다. 1부는 공식행사이고, 2부는 졸업한 동문들끼리 게임과 노래와 경품 추첨으로 진행되었다.


모처럼 초등학교에 들어서자 초등 시절 한없이 넓어 보였던 운동장이 이순을 넘어 바라보니 초라해졌다. 운동장 위에 있는 교사도 작아졌고 교사 앞에 심은 나무도 작아졌다.


초등학교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교사 앞에 선 이순신 동상뿐이다. 그 외에 초등학교를 구성하는 것들이 작아지거나 없어지거나 변화되었다.


초등학교를 한 바퀴 빙 돌면서 주변 울타리를 바라보는데 추억이 울타리 너머에서 몽글몽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동심의 축제라지만 동심을 느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교정도 쓸쓸해졌다.


교정도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인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교실에서 선생님을 따라 배우던 교실의 수런거림도 들리지를 않는다.


초등 시절 우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하기사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십여 년이 넘었으니 선생님들이 우리를 기다려줄 리 만무하다.


그 누가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나도 세월 따라 나이 들어가는데 가는 세월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던가.


동심의 축제를 한다지만 초등시절에 다니던 선후배 모두 어른이 되자 말을 걸기도 그렇고 얼굴이나 모습이 달라져서 대면하기도 꺼려질 정도다.


동심의 축제에 모인 사람들은 "나 지금 이렇게 살아 있소!" 라며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삶의 찬양가를 부르기 위해 초등학교를 찾아온 듯하다.


동심의 축제라지만 초등시절에 함께 다니던 친구를 만나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좋아하던 선후배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반 시절 식목일에 선생님과 뒷동산에 올라가 심은 잣나무와 학교 앞 황톳길에 심은 버드나무와 플라타너스는 모두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니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려고 해도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학교 운동장도 작아지고 교사도 다시 짓고 교정 앞 계단은 좁거나 없어지고 버드나무도 사라졌다.


초등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으로 동심에 젖어 운동장을 서성이며 친구들과 박수를 치며 선후배가 부르는 흥겨운 노래나 응원할 뿐이다.


동심의 축제가 마무리되고 함께 간 친구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동심의 마음이야 가슴에 남아 있어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지만 축제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나이 들어서는 약이 아니라 몸을 망가트리는 못된 것이다. 친구들과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떠들던 시간을 내년에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차의 악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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