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을 고백해 봅니다
어제는 좀 그런 날이었어요. 누군가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는 날. 그래서 그냥 또 글을 썼어요. 쓰고 싶었던 글과 써야만 하는 글. 쓰고 싶었던 글은 주위 사람들에게 내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싶어 써내려 가는 글, 써야만 하는 글은 가끔 마음이 힘들 때 왜 힘든지는 모르겠는데 이 힘듦을 어디다 말할 데도 없고 굳이 말하기도 싫을 때 그러나 덜어내고는 싶을 때 써내려 가는 글이죠.
육아를 한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가고 있어요. 아예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이 때문이 아닌 그저 ‘엄마’가 처음이라 ‘엄마’가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던..?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힘듦보다 몇 천배 몇 만 배는 더 행복한 일이었죠. 아이만 바라보며 달려온 지금까지의 시간이 저에게는 정말 큰 '행복' 그 자체였어요.
예전에 저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듯한 공허한 마음에 늘 혼자 있는 걸 잘 견디지 못했고 하루 걸러 하루 친구들을 만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라온이를 품은 순간부터는 굳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 꽉 차게 행복할 수 있구나를 처음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아이의 존재 자체가 제 마음속에 늘 너무나 따뜻하고 환한 빛을 켜주더라고요.
그러던 어제. 어제도 어김없이 육퇴를 하고 남은 집안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득 '아 내일 누구 좀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유부인’ 하고 싶다~ '해방' 하고 싶다~ 의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정말 그냥 누군가를 만나서 그 친구의 삶 이야기도 듣고 싶고 제 이야기도 하고 싶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이런 마음이 들었던 거 같아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남편'이 아닌 '친구'와.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말이죠.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어요. 그런데 선뜻 만나자는 말이 나오지가 않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집 밖을 나가야 한다는 귀찮음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혹시나 그 친구에게 선약이 있지는 않을까? 주말에는 쉬고 싶을 텐데 귀찮아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늘 제가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 나와줬던 친구였지만 어제는 그냥 좀.. 원래는 참 거침없는 성격이었는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모든 게 조심스럽고 주저되고 겁도 더 많아지는 거 같아요.
갑자기 연락을 한 거여서 '아 미안. 나 약속이 있어서..'라든가 '내일은 좀 쉬고 싶어.'라는 당연한 답변이 돌아올 수도 있는 건데 충분히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 순간에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평소에는 다 괜찮을 일이 정말 별 거 아닐 일이 어떤 날에는 큰 상처로 돌아올 때도 있잖아요. 어제가 딱 그런 날이었어요. 괜히 센티해지고 마음이 조금 물렁해져 있던 날. 차마 마음에 있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대화를 마쳤어요. 그리고는 또 다른 친구를 찾아보려 했는데 막상.. 만날 사람이 없더라고요.
인생을 걷다 보면 친구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시기가 몇 번씩 있는데 그 시기가 저에게는 임신과 출산 때도 어김없이 찾아왔던 거 같아요. 저는 친한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해서 가장 먼저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또 자연스럽게 임신을 해서 가장 먼저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가정이 생긴 제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어떤 친구들은 저를 조금씩 조심스럽게 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모임이 있어도 '얘는 바쁠 거야, 시간이 안될 거야'라고 마음대로 가정하며 저에게만 연락을 안 주는 거죠. 그 친구 말대로 제가 가정이 있으니까, 엄마니까 그랬던 걸까요? 정말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이것 또한 머리로는 이해해보려 했지만 마음은 참 실망스럽고 섭섭한 마음이 가득 들더라고요. 아무튼 이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들이 있었어요.
정말 각별한 사이지만 멀리 살아서 만나기가 힘든 친구들도 물론 있었죠. 그저 이런저런 상황으로 만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황이 딱 어제! 맞아떨어져 버렸을 뿐인 거죠. 그때 하필 또 공허함과 쓸쓸한 감정이 울렁울렁 찾아왔던 거고요. 그 헛헛하고 공허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저는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음.. 오늘따라 왜 그랬을까. 지금까지 괜찮다가 갑자기 또 왜.. 내 곁에는 사랑하는 아이가 있고 늘 든든한 남편이 있는데 왜 또 갑자기 내 마음에는 이렇듯 쓸쓸함과 공허라는 감정이 찾아온 걸까? 사실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예전부터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한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주위에 꼭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그런 사람들. 딱 제 남편이 그렇거든요. 늘 혼자서도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며 '저 사람은 대체 뭔데 저렇게 혼자서도 잘 지낼까?'라고 생각하며 부러움 반 얄미움 반을 느꼈어요. 나도 정말 그러고 싶은데 제발 저런 단단한 마음이면 좋겠는데! 죽어도 그렇게는 안 돼서 씁쓸해진 적이 참 많았죠.
그런데 이제는 그만 인정해 보려 해요. 타인이 중요한 삶은 참 피곤한 인생이지만 나도 이제는 그만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나는 안되는구나.. 나는 정말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사람을 많이 좋아하고 ‘함께’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구나. 이제는 제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인정해 버리는 거죠. 그리고 그냥 나답게 용기 내서 연락해 보는 거예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잘 지내고 있냐고'.
늘 그랬듯 가벼운 일상 얘기만 하다 끝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는 따뜻한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만나지는 못해도 나도 가끔은 네 생각을 하고 있고 나도 네가 정말 보고 싶다고'. 사실 보고 싶은 사람과 직접 마주하지는 못해도 이 마음만 알게 돼도 내 안에 점점 꺼지던 촛불이 다시 환히 빛을 밝힐 거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이 이렇게 솔직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해요. 이런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찾아올 때마다 내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고 그저 부정하고 밀어내기만 한다면! 내 안에 촛불은 조금씩 서서히 꺼져만 갈 겁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듯 몇 번이고 갑자기 힘든 감정들이 찾아올 거예요. 육아를 하면서는 더더욱 그렇겠죠. 24시간 아이랑만 붙어있다 보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만나 마음을 나누고 싶기도 하고 위로를 받고 싶기도 하겠죠. 내 공허한 마음이 아이로 채워지지 않는다고 남편으로 채워지지 않는다고 너무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 마음이 우울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해요. 내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면,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도 낯설고 귀찮다면 이렇게 저처럼 글을 써 내려가보는 거예요. 이렇게 나 자신에게라도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는 거죠. 그러면 너무나 신기하게도 요동치던 내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정리되며 차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럼 너무 신기하게도 정말 괜찮아져요. 그리고 그다음에 또 같은 일을 겪었을 때 스스로 그 힘든 마음에서 해방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잘 찾아볼 수 있게 되죠.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감정들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당연히 찾아오는 감정들일 거예요.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외면하지 말고 충분히 느껴보고 또 제대로 털어놔보자고요. 건강한 '나'로 , 건강한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에요.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지 왜~ 너는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어. 그러니 너에게도 잠시 휴식이 필요한 건 너무나 당연한 거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 많았다.” 오늘 써 내려간 이 글은 어제 잠시 흔들거렸던 저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어 써본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