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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맘 May 02. 2023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지 않은 이유

내 생에 첫 번째 기억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5개월이 되었어요. 하루하루 시간이 참 빠르네요.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너는 라온이 어린이집 언제 보낼 거야?' 라며 많이들 물어봐요. 보내면 삶이 달라진다고.. 자유시간도 많이 생기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좋아진다고 말이죠. 그럼 그때마다 저는 '난 안 보낼 거야. '라고 대답을 해요. 사실은 안 보내는 게 아닌 못 보내는 거랄까..? 어린이집 보낼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저는 마음이 너무나도 무겁고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가득 들거든요. 벌써부터 이런 어두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사실 저에게 있답니다.


신기한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픈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요. 놀랍게도 제 생에 첫 번째 기억은 어린이집을 다녔던 4-5살 정도로 추정이 돼요.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인데도 정말 생생하게 각인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상기하면 언제나 드는 감정은 '불안'. 이유 모를 불안하고 무거운 감정이 저를 에워쌉니다. 오늘은 그때 그 순간을 다시 한번 곱씹어 이야기드려보려 해요.


첫째라서 그런가 혼자서도 뭐든 척척 잘하는 오빠는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오빠는 저와는 4살 차이인데 제가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 당시 초등학교 1학년 8살이었죠. 아빠는 해외출장이 길어졌는지 집을 비운 지 한 달 정도 됐었고 엄마는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매일 아침이면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되었죠. 엉기적엉기적 늘 잠이 많던 저는 뒤늦게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오면 엄마는 하던 출근 준비를 멈추고 옷을 입혀주셨어요.  


"엄마.. 오늘도 늦게 끝나?"


제가 물었어요.


"응.. 엄마 오늘도 저녁에 끝나지~ 수연이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잘 보낼 수 있지?"


늘 저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응! 응!"


저는 늘 천방지축 밝은 아이였다고 해요.


"엄마 이제 출근해야 해서 오늘도 옆집 지은이네 아줌마가 우리 수연이 머리도 묶어주고 어린이집 차도 태워주실 거야~ 오늘은 말썽 부리지 말고 말 잘 듣고 있어야 돼~"


"응응!"


엄마는 옆집 지은이네에 저를 맡기고 서둘러 출근을 하셨어요. 바쁜 엄마 대신 옆집 지은이네 아줌마가 종종 그렇게 머리도 곱게 빗어주셨고 어린이집 갈 준비도 도와주셨죠. 그렇게 늘 저의 머리손질이 끝나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지은이 머리도 예쁘게 따주셨는데 사실 그 둘의 모습은 늘 제 시선에 오래 꽂혀있었고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 옆에 있는 지은이가 참 부러웠던 거 같아요.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그냥 그 순간 엄마랑 함께 있다는 거 자체가 부러웠던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엄마는 손재주가 별로여서 지은이네 아줌마가 묶어주는 머리가 훨씬 더 예뻤지만 촌스러운 쪽 짓 머리라도 엄마가 묶어주는 게 저는 더 좋았으니까요.


어린이집 오전반 일정이 끝난 시간은 오후 12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한 명 두 명씩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떠나갔어요. 하지만 종일반이었던 저는 처지가 같은 소수의 아이들과 여전히 그 어린이집에 남아있어야 했어요. 먹고 싶지 않던 간식을 먹고 자고 싶지 않은 낮잠을 잤죠. 한 시간쯤 잤을까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다시 준비된 간식을 먹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오후 4-5시쯤이 돼서야 그곳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매일이 이런 식이었죠.


며칠 후 저는 엄마에게 또 물었어요.


"엄마. 내일도 늦게 끝나?"


"........."


"내일은 나 좀 더 일찍 데리러 오면 안 돼?"


그곳이 정말 싫었어요. 아니, 그냥 가족 곁에 있고 싶었어요.


"...... 그래~ 내일은 엄마가 우리 수연이 낮잠 자기 전에 데리러 갈게!"


"??!! 정말??"


"응~ 정말! 그러니까 얼른 코 자자."

 

엄마의 그 말이 온전히 다 믿기진 않았지만 조금은 기대를 품은 채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했던 거 같아요.


다음날도 어김없이 오후 12시가 되자 아이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저는 늘 남아있던 아이들과 어김없이 간식을 먹었어요. 그리고 곧이어 낮잠 잘 시간이 되었어요. 역시나 오늘도 엄마는 바쁘셔서 오지 못하는 걸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염없이 문쪽을 바라봤던 거 같아요. 결국 체념하고 선생님이 깔아주신 이불에 누워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려는 그때! 갑자기 방 문이 열렸고 기적처럼 엄마의 모습이 보였어요.

 

"수연아 엄마 왔어~ 오늘은 저희 수연이 제가 데려갈게요~"


정말 엄마였어요.. 정말 저를 데리러 와준 거였어요. 남아있던 주변 아이들은 모두 저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저는 우쭐한 표정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섰어요.


아쉽지만 여기까지가 그 당시 저의 기억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나와 엄마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갔던 건지 어떻게 된 건지는 전혀 기억에 없어요. 사실 그날 어떻게 나를 데리러 올 수 있었던 건지 정말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했던 건지 이런저런 진짜 엄마의 마음이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못했어요. 엄마에게 그날은 평범한 날 중 하루였고 사실 그날의 일도 잘 기억하시지 못하는 것 같아 그냥 저 혼자만의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했죠.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와준 날. 나와의 약속을 지켜준 날.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날.


그러나 어찌 보면 또 아픈 기억이기도 해요. 그날 이후 그런 일은 또다시 일어나지 않았죠. 딱 그날 하루였어요. 하루의 기적.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날이 특별했던 거고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일 같은 처지인 그 소수의 아이들과 저녁까지 그곳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걸. 엄마에게 또 데리러 와 줄 순 없냐고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떼쓰지도 않았고 그냥 어쩔 수 없는 그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찍 철이 들어버린 건 잘 된 일이었을까요 아픈 일이었을까요. 가끔 엄마와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면 이유 모를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니까 말이에요.


사실 '아픈 기억'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아요. 엄마의 사랑을 느꼈던 너무나 따뜻한 날인 건 맞지만 어린이집을 다니는 내내 제 마음속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리를 잡았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때 만들어진 불안은 가끔 아직까지도 저에게 안 좋을 영향을 주곤 하거든요.


물론 내 아이는 나보다 더 강해서, 나보다는 더 적응을 잘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내 아이에게 조금 더 좋은 엄마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누구나 집을 떠나면 또 부모 곁을 떠나면 아무런 이유 없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무조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잠깐 떨어져 있는 거지만, 다시 만나면 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해맑게 지낼 테지만 저는 그 어린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그 감정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제 아이에게는 굳이 잠깐이라도 그 어두운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가 않은 거 같아요.


이런저런 이유로 일찍부터 어린이집을 보내는 많은 가정들. 저도 너무나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육아가 모든 정신적 에너지와 체력적 에너지를 써야 하는 얼마나 고된 일인지 충분히 잘 알기 때문이죠. 그러나 만약 어린이집에 보냈다면 대신 아이가 겉으로는 아무리 밝고 씩씩하고 괜찮아 보이더라도 이런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를 거라 좀 염두에 두시고 어린이집에서 다녀온 아이에게 늘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으로 채워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아이는 분명 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그걸 전혀 생각하지 못하셨으니.. 전혀 몰랐으니 못 해주신 걸 테니까요. 아이들도 '불안' '우울' '슬픔' 이런 어두운 감정들을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를 몰라 다르게 분출하는 것뿐이죠. 그러니 우리가 늘 한결같이 큰 사랑으로 혹시 모를 아이의 힘든 마음들을 조금씩 덜어내줘 보자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도 우리! 내 아이에게 어제보다 더 많이 사랑해 주고 넘치게 표현해 주자고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음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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