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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라나 Jan 30. 2023

나 지금 되게 신나

웃긴 주말


드라마 <더 글로리> 폐인이 많은 요즘 우리 부부도 더 글로리 이야기만 나오면 되게 신이 난다.


"오빠. 그거 봤어? 파트2 예고편 분석해 놓은 거?"

"봤지. 문동은이 성형해서 박연진 된다. "

"앗.. 그 분석은 못봤는데!."

"내 꿈이 너라고 하잖아. 그게 복선이래. 그 닥터도 성형외과 의사고. "

"그래도 ...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몸매가 너무 다르지 않나.."


그러다 신랑이 개그우먼 이수지 님이 문동은(송혜교) 빙의해서 올려놓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한 손에 김밥을 들고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던 이수지 님은 정말 완벽한 송혜교 그 자체였다.

"나 지금 되게 신나. 연진아. 파이팅 박연진! 브라보! 멋지다 박연진! " 


우리는 둘 다 배꼽을 잡고 쓰러졌고 주말내내 돌려보며 웃고 또 웃었다.


https://youtube.com/shorts/jcdF5vMPmuo?feature=share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시간에 신랑은 혼자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빵 사진을 보내왔다.

둘째 뚜지를 케어하느라 집에 있어야 했던 나는 너무 부러워 문자를 보냈다.




개그맨 이수지님과 우리 딸 뚜지는 이름이 똑같다. 성까지 똑같다. 처음 아이를 임신했을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이자 국민 첫사랑 배우인 배수지를 보며 히야~.얼굴이 느무 고급지네, 우리 뱃속 아기도 저렇게 이쁘게 키워야지. 하며 이름을 생각해뒀었다. 출산일이 가까워지자 뚜지는 자꾸만 초음파 사진에서 얼굴을 숨겼다. 엄마의 태교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나보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뚜지는 내가 마취가 깨고 정신이 들었을 때 너무나 곱고 어여쁜 백설공주같은 얼굴로 자고 있었다. 


친정 식구들이 일제히 부모의 얼굴에 비해 성공했다고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더 글로리>버전으로 치자면,

'파이팅 이수지! 브라보! 성공했드아 이수지!" 이런 느낌이었다. 간호사님들도 아이가 너무 하얗고 이쁘다며 칭찬해주셨다.

@눈뜨기 전 신생아 뚜지



아이는 우리 집에 없는 유전자마냥 잠을 자고 또 잤다. 이상하다. 등에 센서 백만 개가 우리 집안 베이비들의 룰인데 뚜지는 눈을 뜨려고 하지 않았다. 젖을 빨 때도 꼭 감은 두 눈, 꼭 쥔 두 주먹, 저는 눈을 뜨지 않겠습니다. 결의에 찬 듯한 신생아의 잠든 모습. 


신생아실에 올려보내고 부모님과 언니는 염탐하듯 그 앞을 지나며 사진을 찍어보내려 했지만, 뚜지는 쌔근쌔근 자고만 있었다. 그러다 백설공주님이 눈을 뜬 순간이 드디어 포착되었다.

언니가 병실로 들어오며 비명을 질렀다. 수란아! 드디어 찍었어!! 놀라지 마!

"왜? 너무 이뻐? 배수지 뺨쳐?"

" 닮은 연예인이 좀 달라. 눈 뜨니까 조세호야. "


사진 속 백설공주님은 눈을 뜨다 만 건지, 다 뜬 건지, 부끄러운 눈빛으로 흘깃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가 바뀐 걸까?

"아니. 너 어렸을 때랑 똑닮았어."

그 이후로 사람들이 아이 얼굴을 보고 이름을 알고나면,  국민첫사랑 수지가 아닌, 

"혹시 개그우먼 이수지?" 이라 장난치기 시작했다.

그래요. 저 그 때 좀 뚜지에게 미안했어요. 이름 가지고 놀림 당하면 우짜지.. 그런데 오늘 송혜교를 똑같이 흉내내는 이수지 님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웃었던지, 

"오빠. 우리 뚜지가 개그우먼 이수지처럼 재밌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국민 첫사랑 수지보다 더 좋다."


주말내내 싱가포르에는 지루할 정도로 비가 내리고 습했지만 우리 부부의 기억은 이수지 님 영상을 돌려보며 서로 흉내내기 바빴던 기억밖에 없다.


"난 개그맨들 존경하잖아."

"나도나도. 개그맨들 엠티가면 그렇게 재밌다며. 그런데 가보고 싶어. 너무 재밌을 거 같아."

"오빠. 근데 나는.. 진짜 웃긴 애들 사이에서 아. 난 덜 웃겨, 언제 치고 들어가지 하고 자존감 떨어지는 애들도 있을 거 같아."

자존감 낮은 나는 그들 상황에 먼저 절로 빙의가 된다.


"그치. 절대 지존처럼 웃기는 애들이 있고 상대적으로 덜 웃기는 애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 덜 웃긴 애들이 평범한 우리 주위에 있다면 우리는 매일 배꼽잡고 웃을 것이다. 


문득 방에서 계속 게임을 하고있는 아들이 생각나 소리질렀다.

"지오야. 게임 좀 그만해. 이제 나와."

"브뤡아흙또뤠리!"


알 수 없는 대답이 들렸다. 뭔가 반항하고 싶은데 그렇게는 못하겠고, 더 하고 싶은데 할만큼 한 거 본인도 알지만 속상하고, 사춘기 언저리까지 온 아들은 그런 마음들을 모아모아 알 수 없는 외계어로 화답하며 나왔다.

순간, 우리는 어이가 없어서 또 웃기 시작했다. 자기도 웃겼는지 같이 웃었다.

그래. 저 정도로만 웃기게 살면 되겠다. 어려운 순간에도 자기가 스스로를 웃기면서 그 순간을 넘어갈 줄 알며 그 정도로 헐렁하게 살아갈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백설공주도, 국민 첫사랑도 다 부질없다. 웃는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이쁘다. 파이팅 아이들! 브라보! 믓지다! 

너희들 그거 아니. 엄마 아빠는 너희를 키우며 지금 되게 신나. (내일은 장담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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