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라고 시작했지만, 대화는 아니었던 밤

by 여백

어제저녁, 우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말하고 있었고,
상대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대화도, 소통도 아니었다.


서로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
꺼내면 혹여 다툼이 될까 해서
미뤄두고 쌓아두었던 말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말을 듣다 보니 답답해졌고,
말을 하다 보니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누군가의 문장은
다음 반박을 부르는 재료가 되었고,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았다.


나는 결국 소리를 냈다.
“그럼 내가 잘못된 사람이네.
네가 원하는 게 결국 뭔데?”


그 말은
상대를 공격하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혼자 감당하지 않겠다는 신호였을까.


이야기는 다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이미 했던 말들을
조금 다른 표현으로,
조금 더 날카롭게 되풀이했다.


그리고 결국
“됐다. 오늘은 그만하자.”
그 말로 끝냈다.


끝냈다고 해서
정리된 건 아니었다.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말을 멈췄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남은 건
답답함과 공허함이었다.


누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틀렸다고 단정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이대로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태.


답은 내릴 수 없었고,
지금 당장 내릴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말을 많이 했는데도
마음은 더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글은
그 밤에 대한 해석도 아니고,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기록도 아니다.


그저
대화라고 시작했지만
대화가 되지 못했던 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남겨둔다.


지금은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
이 상태 그대로,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어디로 가지 못한 채 남아 있다는 것만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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