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솥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살기로 했다(1)

by 김사과


혼자가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였고 24시간 내내 옆에 있던 엄마가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거실에 발을 들여놨을 때 집이 너무 낯설었다.

집은 늘 엄마의 것이었는데 갑작스레 내 집이 되어버렸다. 돌아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죽어버린 화분들, 다용도실에 쌓인 쓰레기들,

쓰지 않는 그릇들. 수저는 왜 그토록 많은 걸까?

비어버린 냉장고 안에 남은 것은 물러진 채소와 냉동음식이었고, 옷장 안에는 엄마의 옷으로 가득했다.


엄마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이제 옷장에 걸어둔 옷들 어느 것도 입을 수가 없다. 구두도 모자도 엄마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엄마는 이제 면으로 된 잠옷과 부드러운 양말 외에는 몸에 걸칠 수 없다. 고장 난지도 몰랐던 전등을 발견했고, 아이들 4명이 들어가 물놀이를 해도 될 것 같은 빨간 고무대야와 마주했다.

베란다에서 커다란 곰솥을 발견하고, ‘저렇게 큰 솥으로 도대체 어떤 요리를 했을까?’ 궁금해하다가 떠올랐다. 밤새 끓이던 사골국물, 육개장, 장아찌를 담그던 소금물 등이.


난 이 집이 여전히 엄마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이 집에는 붉은 대야에 배추를 절이던 엄마가 있었고, 은색 곰솥에 사골을 끓이던 엄마와

그 냄새가 남아있었다. 나는 곰솥을 보며 남은 인생을 통틀어 절대 쓰지 않을 그 솥을 버려야 하나 남겨놔야 하나 고민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 걸까?

만약 이 과정이 죽음이라는 단계를 넘은 후에 치르는 의식이었다면 하나씩 천천히 버렸을 것이다. 구두도, 모자도, 그 커다란 곰솥도. 하지만 엄마는 살아있다. 어쩌다 한 번이지만 가끔 웃고,

가끔 바라보며 살아있다고 표현했다. 이제 이 집은 변명할 수 없는 나의 집인데, 엄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데, 나는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꿈에서 걸어오는 엄마를 보고, 또 빨간 블라우스를 걸친 엄마를 보지만 그건 꿈이다.

이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은 앞으로 나 혼자뿐이다.


나는 전등을 고칠 수도 없었고, 죽은 지 오래된 화분을 버릴 수도 없었다. 엄마가 누워있던 침대를 새 침대로 바꾸지 않았고 빈 냉장고를 청소한 후에

다른 음식으로 가득 채워놓을 수가 없었다.

쓰지도 않을 그릇들, 엄마가 들고 온 남의 집 앞에 버려진 낡은 접시들조차 엄마의 기억이 남아 손댈 수가 없었다.


집 안에 박힌 그 모든 것들을 버리는 일이 꼭

엄마를 버리는 일 같았다.


이 집은 내 집이어서는 안 된다.

계속 엄마 집이어야 한다. 엄마가 돌아올 집이어야 한다. 엄마의 기억 속 그대로 여야 한다. 엄마에게 낯설어지면 안 된다. 엄마 없는 집에서 혼자 웃으면 안 된다. 행복해지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혼자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비이성적인 상태가 계속되었다.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는 일이 모두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그 죄책감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혼자이기로 결심했고 혼자이기를 선택했다. 타인과 함께 하는 행복도 고통도 충분했다. 타인에 대한 책임도 충분히 , 그 마라톤은 아직 골인 지점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찾아오는

추억의 무게도 충분했다. 그 추억으로 인해 갈 수 없는 식당도 있었고, 먹을 수 없게 된 음식도 있었고, 들을 수 없는 노래도 많았다.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도 봤다.


이젠 잔잔해지고 싶다.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심심한 4월의 바다로 살고 싶었다.

골목길에 자리한 작은 슈퍼마켓처럼, 도서관의 열람실처럼 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 먼저

낯선 집에 적응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낯선 집과 다시 정면으로 마주했다.

엄마의 옷으로 가득한 옷장, 썩은 흙이 담긴 화분,

너무 많은 숟가락과 젓가락, 고장 난 전등과 곰솥이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전구는 고치면 된다. 남의 집 앞에서 주워온 접시들은 내다 버리고, 쓸데없이 너무 큰 고무 대야는 골목에 내놓을 작정이다.

마당이 있고 대가족에다, 배추를 절여서 김장을 하는 집이 있다면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옷은 버릴 수 없었다. 곰솥 역시 그대로 두었다.

무엇보다 나는 어디쯤 가있는지 알 수 없는 멘털부터 되찾기로 했다. 그런 후...

곰솥으로 할만한 요리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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