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스타일

by 김사과


호텔 조식은 아메리칸 스타일이었다. 햄 몇 장에 치즈가 녹지 않은 오믈렛은 조금 아쉬웠지만, 버터 바른 토스트도 예쁘게 깎은 파파야도 정말 맛있었다. 지난밤의 느끼했던 마켓 음식 때문인지 신선한 채소도 좋았다. 나는 조식을 실컷 먹고 난 후, 호텔을 나섰다.



아침부터 태양은 뜨거운 빛과 열을 내뿜었다. 잃어버린 양산 대신 모자를 눌러쓰고 치앙마이의 골목을 걷는데, 사람은 없고 내 발소리만 들렸다. 열기는 콘크리트 바닥과 벽을 반사해서 나에게 쏟아졌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훨씬 더 여행하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골목 속에 숨겨진 집을 구경하면서 사진 찍는 것도 새롭고 흥미로웠다. 집집마다 가꾸고 있는 꽃들을 보는 것도 좋았고, 작게 꾸며놓은 짜우티라는 불당도 신기했다. 인형, 꽃, 사탕으로 꾸며놓은 작은 불당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싶게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타패게이트였다. 타패게이트를 갔다가, 사원을 구경하고 커피숍을 들릴 예정이었다. 남들 다 간다는 곳은 어제의 마켓투어로 실망을 경험했지만, 나는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한 인간이다.



걷다 보니 선데이 마켓이 열린다는 넓은 길이 나왔다. 어제 가려다 못 간 거리를 걷고 있으니 아쉽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선택하지 않고 놓친 것은 늘 아쉽고 후회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본 호텔과 커피숍들을 사진에 담았다. 길 상태가 나쁘다고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고, 공기가 나쁘다고 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오늘은 뿌듯한 하루를 보낼 것 같았다.



“아! 안 돼.”


타패 게이트를 열 걸음쯤 앞두고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온갖 블로그의 글과 유튜브의 영상이 스쳤다. 치앙마이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방법들이 출력됐다. 조금 더러울 거라고 했다.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커피숍에서 화장실을 갈 때 가방을 놓고 가진 말라고 했다.


타패 게이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보였지만 내 머릿속은 점점 하얘졌다.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불안 때문에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길 건너 스타벅스가 보였다. 스타벅스라면 정말 질릴 정도로 가 본 곳이었다. 그곳이라면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원 플리즈.”


음료를 주문해서 자리를 잡고 화장실을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냉정한 표정의 남자 직원이 계산을 끝낸 후, 나에게 긴 영어로 말했다. 짧고 쉬운 영어가 아니라면 난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띄엄띄엄 알아들은 것은 딱 하나였다. 매장에서 먹을 수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똑똑히 들은 것은 ‘타이 스타일’이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음료를 받아 들고 여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no drink here?”


여직원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고개만 저었다. 커피 한잔을 비싼 돈 주고 사 들고 나오는데 불쾌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가는 카페도 아니고 세계 어디에나 있는 스타벅스였다.


영어도 태국어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기분이 나빠질 일일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나는 번역어플을 꺼낼 수도 없었다.


거부되는 느낌, 불친절한 느낌,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을 주는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싸우거나 따지거나 별점 테러를 한다고 내 기분이 좋아질 리 없었다. 그저 여행을 망칠 뿐이다.


스타벅스를 나와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나는 조금 전 오는 길에 봤던 커피숍으로 방향을 잡았다. 뭐가 됐든 부딪쳐 보자는 마음으로 걷는데, 길거리에 주차된 툭툭이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는 절대 타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태국의 교통수단. 평소라면 용기 낼 수 없었던 툭툭이를 향해 나는 빨리 걸었다. 망설일 시간 같은 것이 없었다. 기사님은 아주머니였다. 나는 호텔 지도를 보여주며 얼마냐고 물었다.


“200밧.”


처음 툭툭이를 타는데도 나는 이 가격이 바가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탔던 택시의 가격들과 비교해서 두 배가 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몹시 배가 아팠다. 흥정을 하거나 다른 툭툭이를 탈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케이.”


툭툭이 기사 아주머니는 곧장 출발했다. 구글 지도를 보며 툭툭이가 강가의 도로를 달렸다. 배가 아팠는데, 기분은 좋았다. 손에 들린 스타벅스 커피가 출렁댔지만, 내가 경험했던 불친절했던 기억을 날려버릴 정도로 바람이 시원했고, 달리는 기분이 무척 신났다.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비싼데 툭툭이를 탄 지금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호텔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왔는데도 길을 못 찾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문제가 생겼다. 지갑 안에 든 현금은 오백 바트 한 장, 백 바트 한 장, 오십 바트 한 장뿐이었다. 나는 현금들을 보여주며 백 바트가 한 장인 것을 확인시켰다.


그 순간 말은 필요 없었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오백 바트 한 장을 가져가려 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백 바트와 오십 바트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솔직한 마음으로 눈빛으로만 소통했다. 아주머니는 입을 내밀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배가 아파왔다. 시간이 없다. 나는 약속한 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화장실이 코 앞이었다.


백오십 바트 지폐를 쥐어주고 손을 꽉 잡았는데, 툭툭이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은 기분 나쁜 것이 아니었다. 곧장 호텔 방으로 돌아와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나서야, 나도 웃음이 났다.



첫 번째 툭툭이를 타 본 경험 덕분에 치앙마이 여행 중 툭툭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밧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바가지요금인지도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아찔할 정도의 위기 앞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끝은 아니다. 원래 가려던 목적지의 큰길 사이사이의 작은 골목에서 예쁜 꽃과 작은 불당을 보는 것과 같다.


눈앞이 캄캄할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었다. 영어를 못하는 태국 아줌마와 영어를 못 하는 한국인 여행객은 충분히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이게 진짜 타이스타일이 아닐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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