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by 김사과


현실은 항상 한가한 낭만을 꿈꾸는 내게 바짝 다가와 뺨을 후려친다. 그런 일요일이었다.


10월이고 오전인데도 햇빛은 날이 잘 갈린 칼 같았다. 얼른 양산을 꺼내려 가방을 뒤졌지만 없었다. 택시에 떨어트리고 내린 것이다.


“불길해…”



하지만 꿈에 그리던 치앙마이의 코코넛 마켓 앞에서 잃어버린 양산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의 목표는 마켓 네 개였다. 일요일만 열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다 가 볼 생각이었다.


길쭉한 코코넛 나무가 줄줄이 선 마켓에 들어서는데, 그 풍경이 너무나 이국적이었다. 온통 초록색 속에서 사진을 찍고, 또 찍고, 걷다가 또 찍었다.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정말 예뻤다. 그런데 예쁠 것만 같았던 마켓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안 보면 좋을 것들이 보였다.



물건을 파는 주인은 무덤덤하고 손님들을 판단하려는 눈길이었다. 코코넛 슬러시를 먹으려 했는데, 얼음을 담아놓은 통은 청결하지 않았다.


저 얼음은 어떤 물일까?


쓰레기통은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과 플라스틱이 뒤섞여 있었다. 근처에 있는 염소 우리에서 풍기는 분뇨 냄새와 음식 냄새가 뒤섞여 자꾸만 시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사진은 현실을 다 반영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닫고 코코넛 마켓을 나왔다. 멀어지는 키 큰 코코넛 나무가 처음 볼 때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낭만적이진 않았다.



택시를 타고 다음 마켓으로 이동했다. 찡짜이 마켓이라고 불리는 러스틱 마켓이었다. 오후로 넘어가자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빛은 눈을 뜰 수 없게 했다. 걷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관광객이었다. 어디선가 한국말도 들리고, 중국말과 일본말도 들렸다. 그들을 따라 걷다 보면 기념품 상점만 나왔다.


유튜브와 블로그마다 반드시 가 보아야 한다던 마켓은 무슨 기준일까? 누군가 시작한 선언을 그다음 사람이 따라서 선언하고, 다음 사람은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 법칙이 되어버리는 패턴만 보였다. 줄 서서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나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유튜브 영상을 찍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찡짜이 마켓을 나왔다.


남은 마켓은 두 개였다. 하나는 치앙마이 일요일 마켓 중 가장 크다는 선데이 마켓. 다른 하나는 화이트 마켓이었다. 둘 다 가야 하나? 나는 이미 지쳐 있었고, 마켓에 대한 기대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채였다.


그래. 하나만 가자. 그런데 어딜 가지?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다는 선데이 마켓? 작지만 아기자기한 화이트 마켓? 책과 블로그와 유튜브로 본 정보를 하나하나 떠올린 후 택시 어플에 원님만을 찍었다.



원님만 건물 앞에 내리자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반짝이는 알전구의 불빛이 보였다. 작은 마당 안에 점포들이 옹기종기 모였고,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게다가 라이브 연주에 젊은 여자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여행의 낭만을 여기서 찾는 건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나는, 지갑을 쥐고 음식을 만들고 있는 가게 사이사이를 돌았다. 하지만 나를 먼저 맞이한 것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독한 태국 향신료 냄새로 가득 찬 골목에서 나는 그만 얼어버렸다.


“잠깐만! 나 자신 있었는데?”



그제야 나란 인간이 검증하지 않은 어떤 음식도 먹어볼 용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껏 소심해져서 그래도 만만한 고기 꼬치와 바나나 로띠를 시켰다. 구석에 앉아 어두운 밤을 밝히는 반짝이는 알전구 불빛과 노랫소릴 들으며 한입 먹었다.


“와! 고기 냄새.”

“너무 느끼하네.”


첫 해외여행에서 가장 자신 있었던 것이 태국 음식을 잘 먹을 수 있다는 까다롭지 않은 입맛이었다. 틀렸다. 나는 너무너무 까다로운 인간이었다. 먹지 못한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죄책감이 밀려왔다. 치앙마이 문화와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미안해져 그 자리에 더 있는 게 즐겁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을 찾아 음식 골목을 다시 돌았다. 상점들 끝에 망고 디저트 가게가 있었다. 나는 망고가 잔뜩 올라간 슬러시를 주문했다. 어린 여자 직원은 오랜만에 손님을 맞은 것처럼 허둥댔다.


냉장고 안에서 망고 슬러시 통을 꺼내 긁어내는데 얼마나 오래 얼어있었는지 잘 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직원은 통을 떨어트렸는데, 어디에 떨어트렸는지 물소리가 나고 물이 튀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여직원은 물에 떨어졌던 통을 다시 올려서 슬러시를 담고 그 위에 통조림에서 꺼낸 망고를 몇 개 올려주었다. 컵을 받아 들고 가게에서 멀어지며 고민했다.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조금 먹다가 그것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마켓에서 나왔다.



마켓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길 건너 마트에서 비싼 바나나를 사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배고프고 지친 나는 씻으면서도 머리를 말리면서도 내내 안 좋은 생각만 했다. 눈치 보고 용기 없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식당에도 못 들어가고 그랩으로 배달을 시키지도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 똑똑똑


문을 열자, 호텔 직원이 조식 체크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 건지 체크하는 동안 직원은 밖에서 기다려주었다. 나는 종이를 주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 마음속에는 온통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과 이곳이 너무 싫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실은 나 때문인데, 마음속에 자리한 이 나라와 이 도시와 여기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미안했던 것 같다.


“I’m sorry.”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아요.”


직원은 따스한 미소로 조식 체크 종이를 챙기며 인사했다.


“굿나잇.”


호텔 방 문을 닫고 바나나를 먹는데, 그래도 내일 아침에는 맛있는 조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을 수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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