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카페

하얗게 덧칠된 틈

by 투명인간

고요한 무인카페,

문 틈 사이로 정체 모를

재즈가 흘러나온다


조심스레 문을 여니

온통 새하얀 속살

내 체취가 밴 듯 익숙한

하얀 의자에 몸을 얹고,


검은 동공의 카메라와

무심한 눈인사를 나눈다

잠깐의 여유를 빌려 쓰려

기계 앞에 선다


느린 인건비가 삭제된 자리

추출이 시작되기도 전에

빨대 봉지는 입으로 찢기고

컵뚜껑은 손바닥에 쥐어져 있다


나는 이 속도에 노련해진다


작은 종소리와 함께

들어선 양복의 신사

외계의 언어 같은 화면 앞에서

작은 글씨를 번갈아 찌푸리다


내게 절박한 곁눈질을 보낸다


그의 커피 한 잔을

내가 대신 연주한다

건반 대신 스크린을

두드리는 소리


너덜거리는 쿠폰 위로

무질서하게 내려앉은

아홉 개의 도장 자국들


그 마지막 한잔이

완성될 동안,


텅 빈 공간 앞을

서성이다 끝내

돌아가는 뒷모습들을

나는 여러 번 배웅했다


하얗게 덧칠된

요즘의 문법 앞에서

도장 하나 찍는 일조차

누군가에겐 매번

거대한 망설임이 된다


체육복 차림의 학생들이

망설임 없이 줄을 선다

이미 자리에 가방을 던져놓고

제집인 양 매끄럽게 웃는다


고요한 무인 카페,

그 틈을 메우지 못한

정체 모를 재즈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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