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걷는다는 것

우리가 잃어버린 도시의 시간 속으로

by 도시와 사유


매일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도시의 진짜 얼굴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심코 걷던 보도블록 아래 덮여버린 하천이 흐르고, 새로 지은 오피스텔 자리에는 누군가의 오랜 삶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익숙했던 도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앞으로 연재할 글은 '안다'고 생각했던 서울의 속살을 헤집고, 사라지는 것과 남겨진 것들 사이에서 도시와 나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는 여정의 기록이다.


나의 서울 읽기는 언제나 걷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발걸음은 단순히 지점을 잇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켜를 더듬고, 공간에 새겨진 기억을 불러내는 의식에 가까웠다. 하루가 다르게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거대한 건축물 뒤편,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낡은 간판을 이고 선 상점들.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으로 발을 들이면, 도시는 비로소 감춰두었던 맨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숫자로 기록된 역사가 아닌, 누군가의 삶이 땀처럼 배어있는 진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을지로의 골목에서는 쇠 깎는 소리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산업 생태계의 맥박이 느껴졌고, 오래된 시장의 좌판에서는 상인들의 억센 생활력이 묻어났다.


나는 사라지는 것들의 마지막 증인이 되고 싶었다. 재개발 현장을 둘러싼 삭막한 가림막 너머로, 포클레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텅 빈 동네를 걸었다. 그곳에는 어제까지 누군가의 집이었을 공간의 잔해와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마지막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버려진 앨범 속 낡은 사진 한 장에서, 흙먼지 쌓인 낡은 문패에서 한 가족의 역사를, 한 동네의 생태계를 상상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 뒤편, 불 꺼진 동네의 서늘한 침묵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도시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우며 오늘의 얼굴을 만들었는가.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행위는 때로 고통스러웠다. 외부인인 나의 관찰이 누군가의 아픔을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며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거대한 개발 논리 아래 한 줌의 먼지로 흩어질 것이라는 절박함이 나를 다시 길 위로 이끌었다.


그것은 화려한 역사가 아닌, 이름 없는 이들의 생활사이자, 자본의 논리 앞에 힘없이 허물어져 간 삶의 터전에 대한 증언이었다. ‘그 많던 사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는 물음은 도시의 변화가 단지 공간의 재편이 아닌, 수많은 삶의 경로를 뒤바꾸는 거대한 사건임을 깨닫게 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으로 가득한 혼란의 기록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길고 지독한 걷기의 여정 끝에, 나는 비로소 도시의 결을 따라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것은 서울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이 거대한 도시 속에서 끊임없이 나의 자리를 묻고 찾아 헤매는 한 이방인의 고백이다. 이 책을 집어 든 당신도,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는 여행을 함께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어제를 이해할 때, 비로소 내일의 도시를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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