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읽기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1-1. 질문하는 발걸음:

by 도시와 사유
도시와 사유2.jpg 관악구 청림동 일대 답사 중에 촬영한 관악의 모습.


도시를 걷는 행위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최단 경로를 탐색하고, 주변 풍경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아주 사소한 질문 하나가 발목을 붙잡을 때가 있다. 매일 지나치던 길모퉁이의 낡은 건물 앞에서, “이 건물은 왜 여기에 있을까?” 하고 묻게 되는 순간이다. 그 질문 하나로 무심했던 풍경은 거대한 수수께끼가 되고, 평범한 산책은 도시의 숨겨진 결을 더듬어가는 탐험으로 변모한다.


나의 도시 읽기는 언제나 그런 질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대방동에 위치한 옛 유한양행 사옥이 그 출발점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건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건물 한편에 새겨진 머릿돌을 발견하고 그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하자, 건물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하나의 건축물이 실미도 사건의 종결지였다는 비극적 현대사와 연결되고, 설립자 유일한이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부천의 공장과 구로구 항동의 별장까지, 서울이라는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이야기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단 하나의 질문이 닫혀 있던 시공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이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도시의 건축물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품고 있는 살아있는 단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후로 나는 도시의 ‘정체불명 건축물들’에 매료되었다. 동대문 인근 충신동의 원기둥 형태를 한 독특한 목욕탕 건물은 이제 원단 창고로 쓰이며 지역 산업의 변화를 증언하고 있었고, 후암동 언덕에 자리한 낡은 일본식 가옥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문화주택지’로 불리던 동네의 과거를 소환했다. 이런 건물들 앞에서 나는 시간을 잃는다. 사용승인일자나 건축 양식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비워냈을까?’, ‘이 건물의 시간은 주변 골목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러한 질문을 품은 시선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대조적인 풍경을 발견하게 한다. 유기적으로 자라난 듯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동네를 걷는 것과,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도열한 격자형 계획 도시를 걷는 것은 전혀 다른 독해의 경험을 선사한다. 전자의 풍경이 오랜 시간 축적된 개인들의 삶과 우연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후자의 풍경은 자본의 효율성과 계획된 미래를 웅변한다. 낡은 벽돌담의 질감, 길의 폭, 창문의 위치와 모양까지, 도시의 모든 디테일은 그것이 놓인 맥락 속에서 해독을 기다리는 고유한 문자가 된다.


이러한 질문의 여정은 필연적으로 개별 건축물을 넘어 도시 전체의 구조, 즉 ‘도시조직(Urban Tissue)’으로 시선을 확장시킨다. 하나의 건축물은 도시 구조의 전개와 함께 이해될 때 그 가치를 더하기 때문이다. 건물의 위치는 과거 복개된 하천의 물길을 따라 결정되기도 하고, 인근에 들어섰던 공장이나 군사시설의 영향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그렇게 점(點)으로서의 건물을 쫓다 보면, 어느새 선(線)으로서의 길과 면(面)으로서의 동네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마치 도시 고고학과도 같다.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라진 것의 흔적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로의 미세한 굴곡에서 오래전 물길을 상상하고, 유난히 넓은 골목에서 옛 시장의 소란스러움을 떠올린다. ‘종점숯불갈비’라는 상호명은 이제 번화가가 된 이곳이 한때 버스 노선의 종점이었음을 알려주는 ‘화석어(化石語)’처럼 남아 도시의 변화를 증언한다.


결국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암호를 해독해나가는 과정과 같다. 그것은 정해진 답을 찾는 시험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나만의 해석을 구축해나가는 지적인 유희에 가깝다. “이 건물은 왜 여기에 있을까?” 이 단순한 물음은 우리를 도시의 표면 아래로 끌어당겨, 잊혀진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 더 나아가 이 질문은 우리가 발 딛고 선 땅과 우리의 삶을 형성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나의 발걸음은 오늘도 그 질문을 품고 이름 모를 골목으로 향한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도시의 비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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