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질문하는 발걸음: 매일 지나던 길의 새로운 얼굴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지, 혹은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그 길. 우리의 발걸음은 놀랍도록 정직하게 어제의 동선을 복제한다. 풍경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의 일부일 뿐, 시선은 발끝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기 일쑤다. 익숙함은 이토록 강력한 마취제다. 그것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세상의 경이로운 디테일을 감지하는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낯설게 보기’는 이 무뎌진 감각을 깨우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의식이다. 거창한 여행이나 특별한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오직, 매일 지나던 그 길 위에서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해보려는 작은 의지뿐이다. 예를 들어, 평소보다 십 분 먼저 집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풍경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른 아침의 햇살은 어제의 그림자와 다른 각도로 건물에 부딪히고, 밤새 내린 이슬을 머금은 가로수 잎은 한낮과는 다른 빛깔로 반짝인다. 셔터를 올리는 상점들의 부산함, 하루를 시작하는 이웃들의 활기찬 발걸음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속한 동네의 아침이라는 ‘의식’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된다.
낯설게 보기는 속도를 늦출 때 더욱 깊어진다. 목적지를 향해 종종걸음 치던 발걸음을 의식적으로 늦추고, 보도블록의 무늬를 세어가며 걷는 것이다. 그러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낡은 상점의 쇼윈도에 수십 년은 됨직한 마네킹이 서 있고, 어느 집 담벼락에는 아이가 그린 듯한 서툰 벽화가 숨어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틈으로 하늘이 보이고, 누군가 정성껏 가꾼 작은 화분이 앙증맞게 놓여 있다. 이 사소한 발견들은 무미건조했던 길에 생기와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시각을 넘어 다른 감각을 동원할 때, 낯설게 보기는 한층 더 입체적인 경험이 된다. 눈을 감고 길의 소리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자동차 소음의 막을 뚫고 들려오는 어느 집의 피아노 소리, 멀리서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서걱임이 뒤섞여 익숙한 길의 ‘소리 풍경(Soundscape)’을 만들어낸다. 후각 또한 강력한 기억의 매개체다. 좁은 골목 안쪽에서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 낡은 이발소의 비누 향기, 비 온 뒤 흙과 아스팔트가 뒤섞인 냄새는 그 길에 대한 고유한 인상을 각인시킨다. 거친 벽돌담에 손을 대어보고, 오래된 철문의 차가움을 느끼는 촉각적 경험 역시 공간과의 유대를 깊게 한다.
시선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훈련도 필요하다. 늘 정면만 보고 걸었다면 고개를 들어 건물의 2층, 3층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1층에는 세련된 카페가 있지만, 2층에는 낡은 간판을 단 학원이, 3층에는 주인의 취향이 엿보이는 가정집의 베란다가 펼쳐지는 식이다. 하나의 건물은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와 삶의 양태를 품고 있는 작은 우주다. 땅을 내려다보면 맨홀 뚜껑에 새겨진 설치 연도가 이 길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고, 보도블록 틈을 뚫고 피어난 작은 들꽃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말을 건넨다.
이처럼 익숙한 풍경을 의도적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행위는, 도시를 단순한 기능적 공간에서 다채로운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텍스트로 바꾸어 놓는다. 매일 지나던 길은 더 이상 지루한 통로가 아니라, 매일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흥미로운 책이 된다. 이 사소한 실천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선물은, 내가 발 딛고 사는 공간에 대한 깊은 애착의 형성일 것이다. 나의 발견이 쌓여 나만의 지도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나는 이 도시의 방관자가 아닌, 그 속살을 어루만지는 진정한 주민으로 거듭난다. 오늘, 늘 가던 길 대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옆 골목으로 발을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용기가 당신의 도시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