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의 시선

1-3. 질문하는 발걸음: 도시의 표정과 소리를 담는 방법

by 도시와 사유
수일시장1.jpg 은평구 수색동의 수일시장.


도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보기’를 넘어선 ‘관찰’의 시선이 필요하다. 질문을 품고 낯선 풍경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에게, 도시는 비로소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때 관찰자는 도시의 표정을 읽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섬세한 기록자가 되어야 한다. 도시의 표정과 소리를 담는다는 것은, 그 공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늬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먼저 도시의 ‘표정’을 담는 법에 대하여. 도시의 표정은 거대한 랜드마크나 화려한 야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관찰자의 시선은 계절과 날씨,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포착해야 한다. 비 오는 날 아스팔트 위에 비친 네온사인의 번짐, 이른 아침 골목길에 길게 늘어선 그림자의 농도, 해질녘 낡은 건물의 외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의 색채. 이 모든 것이 도시가 짓는 찰나의 표정이다. 건물의 외벽을 장식한 타일의 문양,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상점 간판의 독특한 글씨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창문의 형태와 같은 건축적 요소들은 그 동네가 품고 있는 시간의 결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속도를 늦추고 머무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에 드는 골목 어귀에 잠시 멈춰 서서,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온기를 느껴보고, 낡은 벽돌담에 새겨진 낙서의 의미를 유추해본다. 시선을 위로 향하면 전봇대에 거미줄처럼 얽힌 전선들의 무질서한 아름다움이, 아래로 향하면 오랜 세월 닳고 닳은 보도블록의 질감이 말을 걸어온다.



수일시장9.jpg 은평구 수색동의 수일시장.


사진기는 이 순간을 기록하는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단순히 아름다운 구도를 잡는 것을 넘어, 벗겨진 페인트 자국, 녹슨 철문, 하늘을 비추는 창틀처럼 도시의 피부에 새겨진 주름과 모공을 담아내려는 ‘기록’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도시의 표정은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더욱 생생해진다. 출근 시간대 지하철역 입구의 분주한 발걸음, 오후의 공원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여유로운 몸짓, 하굣길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그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동적인 표정이다.


다음은 도시의 ‘소리’를 담는 법이다. 우리는 흔히 도시의 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하고 의식의 바깥으로 밀어내곤 한다. 하지만 관찰자는 그 소음의 막을 뚫고 도시가 들려주는 다채로운 ‘소리의 풍경(Soundscape)’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잠시 눈을 감고 청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훈련이 효과적이다. 그러면 무의미하게 들리던 소음의 덩어리가 분리되기 시작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공사장의 규칙적인 망치 소리, 시장 상인의 활기찬 외침, 아이들의 웃음소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음악,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까지. 이 모든 소리가 뒤섞여 그 장소만의 고유한 음향적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특히 도시의 뒷골목이나 오래된 동네에서는 현대적인 소음에 가려져 있던 과거의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쇠를 깎고 다듬는 소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는 창신동의 봉제 공장 지대, 도마 소리와 칼 가는 소리가 정겨운 재래시장의 소리들은 그 지역의 역사를 증언하는 생생한 음성 기록물이다. 이러한 소리를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짧은 영상이나 음성 녹음을 활용하는 것이다.


시각적 정보 없이 소리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그 공간의 분위기와 역동성을 더욱 깊이 있게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다. 도시의 표정과 소리를 담는 행위는 결국, 나와 도시 사이에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다. 관찰자의 시선과 귀를 통해, 도시는 더 이상 익명의 공간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특별한 장소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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