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의 무기화와 경제안보

한·미·일 동맹의 새로운 과제

by 임찬수

새로운 전략 자산의 등장


21세기의 산업 지형은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화석연료가 지배하던 에너지는 탄소중립 기술로, 전통 제조업은 반도체와 AI 기반의 첨단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거대한 전환의 기저에는 리튬, 니켈, 희토류, 갈륨과 같은 ‘핵심광물(Critical Minerals)’이 존재한다. 이제 핵심광물은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 전환의 필수 요소이자, 첨단 군사력을 유지하는 안보 자산이며, 미래 산업의 패권을 결정짓는 전략 자산이다. 그러나 현재 이 자산의 공급망은 특정 국가, 즉 중국에 의해 과도하게 독점되어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자유무역 질서와 국가 안보에 심각한 불확실성을 던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중국의 기술경제적 국가전략


경제안보는 "국가의 경제적 이해를 위협하는 사건이나 구조적 변화로부터 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현재 핵심광물 분야에서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의 ‘기술경제적 국가전략(Techno-Economic Statecraft)’이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5개년 계획과 당-국가-기업의 일체화된 움직임을 통해 채굴부터 정련, 가공에 이르는 전주기 가치사슬(Full-chain control)을 장악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느슨한 환경 규제는 가격 경쟁력을 왜곡시켜 경쟁자들을 도태시켰고(진입장벽 강화), 외국 기업에게는 시장 접근을 대가로 기술 이전을 강요했다. 특히 갈륨(Gallium)의 사례는 이러한 전략의 정점을 보여준다. 알루미늄의 부산물로만 생산되는 갈륨의 특성을 이용해, 중국은 추출 설비를 독점하고 수출 통제를 단행했다. 이는 외국 경쟁사의 원재료 접근을 차단하여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하는 동시에, 안정적 공급을 원하는 기업들이 중국 내에 합작법인(JV)을 설립하도록 유도하여 기술을 흡수하는 이중의 포석이다. 현재의 광물 시장은 공급자(중국)의 힘이 절대적이며 경쟁의 본질이 ‘기업 대 기업’이 아닌 ‘기업 대 국가’로 변질된 상태다.



한·미·일 동맹의 잠재력과 정책적 전환


이러한 구조적 리스크는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 미국, 일본 3국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을 공유하고 있다. 3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금융·투자 지원 수단(융자, 보증, 보험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첨단 기술력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다. 문제는 이 자원들을 어떻게 통합하여 시너지를 내느냐에 있다.



단순한 자원 외교를 넘어선 구체적이고 실험적인 협력


첫째, ‘광물 스와프(Mineral Swap Lines)’의 도입이 필요하다. 모든 광물을 각국이 개별적으로 비축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통화 스와프처럼 각국이 특정 광물을 나누어 비축하고 위기 시 상호 교환하는 방식은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공급망의 회복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둘째, 국방 분야 핵심광물 공급망의 통합이다. 군수 산업은 안정적인 수요처를 제공하고 비용보다는 신뢰성을 중시한다. 국방 분야에서의 비중국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은 민간 시장이 감당하기 힘든 초기 투자를 견인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셋째, ’역(逆)페이 투자촉진(Reverse-Pay & Matchmaking)’이다. 기업 간의 탐색 비용을 줄여주고, 상대국의 정련소나 R&D 센터 방문을 통해 자연스러운 파트너십과 장기 구매계약(Off-take)을 유도하는 것은 민간 주도의 공급망 결속을 다지는 실질적인 방안이다.



경제안보 종합협정을 향하여


핵심광물 위기는 단기적인 수급 불안이 아니라, 지정학적 패권 경쟁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 역시 단편적인 정책을 넘어 포괄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한·미·일 3국은 ‘미니딜(Mini-deal)’ 형태의 부문별 무역협정에서 시작하여, 인력 이동의 장벽을 낮추고, 공동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노력을 포괄하는 ‘경제안보 종합협정’의 체결이 필요하다. 공동의 산업전략 아래 자본을 통합하여 투자하고, 위기 상황을 함께 모니터링하며, 대체 수요를 창출해내는 동맹. 이것이야말로 중국이 설계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의 산업 경쟁력과 국가 안보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지금 자원 확보를 넘어, 자유롭고 신뢰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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