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초기기억은 무엇입니까?

나는 기다리는 게 정말 싫다.

by 사춘기 엄마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 유투브를 보다가

현대인들이 기다리는 것을 잘 못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

관심이 쏠렸다.


기다림!!!!

나는 기다리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아니, 싫어했다.

누구나 기다림을 지루해하고

그 시간을 지겨워하겠지만

나는 병적으로 기다림을 싫어했었던 때가 있었다.


기다리는 것을 왜 이렇게 싫어하고

기다리게 한 사람을 증오할 정도로(?)

힘들어하는가.


나는 그저 내가 성격이 급하고,

시간을 이렇게 버리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기다림을 못 견뎌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다림에 대한 나의 증오적 태도에 대해

제대로 직면하게 된 건

작년부터 시작한 상담심리 공부 덕분이었다.


심리 이론 중에

[미움받을 용기] 책으로 유명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초기기억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초기기억은 말 그대로 어린 시절 기억을 말한다.

어린 시절 기억이 여러 가지 일텐데

초기기억은 그 중에서도

어린시절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하면

바로 떠오르는 기억들,

그 기억 속 사건에 대한

그때 당시의 생각, 감정까지 포함한다.

이 초기기억이 우리의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초기기억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하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수업 중

여러분의 초기기억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내 초기기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기억력은 어떤 부분은 매우 좋고,

어떤 부분은 이상할 정도로 나쁜데

유치원 까지의 기억은 잘 안 나고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3-4학년 시절 쯤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바로 기다림의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쯤으로 기억하는데

계절은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밤이 되면 조금 추운 계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항상 밤에는

혼자 집에 있었는데

오빠랑 언니는 학원,

엄마, 아빠는 일하시느라,

나 또한 2-3군데 학원을 들렀다

집에 돌아와도 저녁 7시.


집에 들어가면

깜깜한 거실만이

나를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그 껌껌함이 그렇게도 싫었다.

항상 집에 들어가면

온 집안의 불을 다 키고

언니나 오빠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지겨운 시간들.


그날은 정말로 깜깜한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었다.

집 건너편 환한 당구장 입구에서

우리 아파트를 바라보면 아파트 입구가 아주 잘보였다.


그날은 그 입구에 앉아

언니나 오빠,

혹은 엄마나 아빠가 오기를 빌면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 혼자 절대 저 어둡고 무서운 집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날은 춥고

배도 고픈데,

가족들은 오지 않고

그래도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집에 들어갈거야,

들어가고야 말겠어!! 라며

다짐을 새기며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함께 집에 들어갈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식구들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구장 벽에 걸린 씨뻘건 전자 시계로

밤 8시, 9시가 넘어가도

식구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터벅터벅 집에 들어가고야 말았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

쌔까만 어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무하고 허탈해서

멍하니 현관에 앉아있는데

5분도 채 안되어

갑자기 현관이 열리고

오빠가 훅 들어왔다.


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열이 올라서

오빠에게 꽥 소리를 지르며

지금 오면 어떡해!!! 하며

소리를 광광 지르면서 울었다.


어이가 없는 오빠는

얘가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그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내가 한 생각은

단 하나.


5분만 더 기다렸더라면,

5분만 더 참을걸,

바보같이 그걸 못 참고 들어와버렸어

라는 자기비난 뿐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지옥같았기 때문에

나는 학원도 늘 혼자 다녔다.


친구와 함께 다니면 때에 따라 기다려줘야 하고

또 그 친구가 나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해서

그런 모든게 싫어서

항상 혼자 다녔고

어렸을 때는

그게 좋고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좋았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니

프로이트가 말하는 방어기제 중

회피 기제를 썼던 것이다.

기다림을 피하고 싶어서,

아예 인간관계를 회피해버리는 것으로

나를 지켰던 것이다.


또다시 그렇게 서러워지기 싫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황 자체를 안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처음에는 아주 친하고 좋으나

점차 그 관계가 깊어지면

내 선에서 정리하는 식이 반복되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깊어지면

그 사람을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면서

속상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결혼을 했는데

신혼초에 남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가끔 발생하면

남편에게 버럭버럭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남편은 그런 내가 이해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나조차 내가 왜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시간은 흘렀다.


하지만 이 기억을 지금까지

한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10여년 전 교육청 연수로

감정코칭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연수 중에 초기기억에 대해

적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때는 이 기억에 대해 적으면서

아~ 너무 싫은 기억이다,

이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워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때는

내 어린시절의 상처를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이 기억에 대해 쓰고 난 후

너무 슬픈 기억이야

불쌍한 어린시절의 나, 하고

그냥 내 연민으로 끝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그때 내 나이 고작 10살,

10살 아이가 밤에 혼자 있는 건

당연히 무섭고 불안했을거야,

좀더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였어.


그런데 그때 엄마, 아빠는 너무 바쁘셨어.

나를 일부러 방임했던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 분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거야.


그때 하필 너는 좀 어린 나이였었고

어쩔 수 없이 너는 집에 혼자 있어야 했지,

모두에게 안타까운 상황이었던 거야,

그 시간을 잘 버텨서 다행이야,

잘 지나쳐 왔어, 잘 했어, 라고

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어린시절의 나를

무척이나 많이 위로해주었다.

무서웠겠다고,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다고.


그 시절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자

내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점차 줄어들고

그 분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어린 나이의 아이를

혼자 내버려뒀냐고,

원망하면서도

사실 그때도 지금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나를 방임한 게 아니라는 것을.


학교가 끝나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가

최대한 집에 혼자 있게 하지 않기 위해

집에 쌀은 떨어져도

학원비는 어떻게든 만들어서

나를 학원에 보냈다는 걸,

후에 엄마에게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


"엄마, 예전에 그렇게 집에 돈 없을 때도

어떻게 학원을 보냈어?"

내 질문에 엄마는

"그러면 학교 끝나면 집에 와서

혼자 오래 있어야 하잖아,

학원이라도 가면 뭐라도 배우기도 하고,

그러니까 없는 돈에도 학원을 보냈었지." 하는게 아닌가.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엄마, 아빠의 사랑 속에 컸었구나 하는 걸

30대에 알게 되었다.

사춘기가 이렇게 길었다.


그래서 그럼, 지금은 기다리는 것을 잘 하냐.

아니, 아직도 싫어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병적으로 싫어하진 않는다.


기질적으로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알고리즘 상 효율적이지 않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므로

최대한 기다리는 시간 없게

미리 일정을 짜거나 계획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생기면

기다리는 것 싫은데... 하면서 기다린다.

그래도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사실 그렇게까지 힘들지도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다림에 대한 내 회피가

결과적으로 남편과 결혼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이야기인즉

남편과 연애할 때

나는 남편을 기다리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형 연애를 했다.


연애할 때

남자친구를 못 볼 때는 보고 싶어서

전화도 하고 문자도 해야하는데

전화하거나 문자했을 때

답이 없는 게 싫어서,

또는 답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핸드폰을 꺼놓거나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잘 보지 않았는데

이 부분이 남편에게는

이 여자 쉽지 않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는

이상한 심리를 건드려서

나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연락을 잘 안되냐,

뭐 하고 있냐 하는 식으로

안정형 애착인 남편을

안절부절 못하게 긴장시킨 여자가 된 것이었다.


이 여자를 보려면 결혼을 해야

매일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남편은

그때의 자신의 결심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인연이 될려면 이렇게도 되나보다.


회피가 결혼까지 연결되다니,

세상일은 이렇게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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