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관계는 이리 어렵다.
주말에 시골 부모님 댁을 다녀왔다.
나와 엄마, 아빠의 관계는 좋다고도,
안 좋다고도 할 수 있는 관계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다가도
언성이 높아져 싸울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서로의 약점을 잔인하게
파헤쳐버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엄마, 아빠와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서
재작년에는 큰 맘을 먹고
남편과 나,
엄마, 아빠
이렇게만
강원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쁘나는 차를 오래 타는 것을 힘들어해서
아가씨네에 맡기고)
여행의 결말은 최악.
중간에 큰 말다툼이 생겨서
엄마는 여행 중간에
집으로 홀로 돌아가버리고
아빠는 한숨,
나는 망연자실,
중간에 낀 남편은 안절부절.
최악의 상황으로
여행이 끝났었다.
그 후로도 엄마, 아빠와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엄마, 아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부분도
많이 생겼는데
도대체 이 분노는 어디서 오는걸까.
엄마, 아빠와 싸울 때의
패턴이 어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항상 똑같은 상황에서
싸움이 일어난 걸
발견했다(!!!)
바로 엄마, 아빠가 서로
비난하고 비아냥대는 상황을
참지 못하고
내가 질러버리는(?) 패턴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만 좀 싸우라고,
지겹지 않냐고,
왜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이냐고.
사실 40년 넘게 사시다보면
싸울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상황을 못 견뎌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럴까.
내 성격이 못돼 처먹어서 이러나?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내 안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이유인즉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는
부부싸움을 많이 하셨는데
가장 심했던 시기가
바로 내 고등학교 시기였다.
안그래도 공부하느라
신경질이 엄청나게 나있는 상황인데
엄마, 아빠는
서로 눈만 마주치면
싸우셔서
내 짜증은 머리 끝까지
차 있던 시기였다.
어떤 날은
밤에 들어오셔서 싸우시고,
또 어떤 날은
아침부터.
나는 그 싸움 소리에 이골이 나서
TV나 영화에서
사람들끼리 싸우는 장면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거의 애니메이션만 본다.
그런데 두 분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손주들이 있어도,
사위들이 있어도,
며느리가 있어도,
그 말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강원도 여행에서는
오랜만의
막내딸과의 여행이라
두 분이 극도로 조심하셨지만
가볍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경멸, 비난, 핀잔이 숨어 있어
나는 그 사소한 대화도 듣기가
힘들었다.
결국 폭탄을 터트린 건 나였다.
엄마, 아빠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된 말다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것이었다.
내 안에서
싸움 혐오증이 극에 달해
부모님의 사소한 다툼도
보기 싫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엄마, 아빠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두 분이 건강하실 때
같이 여행도 가고 싶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엄마, 아빠의 관계를
회복시켜드리기 위해
부부상담도 받게 해보고
엄마, 아빠가 늘어놓는 하소연도
매번 들어드렸지만
두 분의 관계는
쉽게 회복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두 분의 관계는
두 분이서 알아서 하시고,
나는
나와 엄마, 아빠의 관계라도
원만히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이 싸움 혐오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 아빠는 왜 싸우실까.
사실 엄마, 아빠 사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나빴던 것은 아니다.
아빠의 실직 후
두분이 함께 장사를 하시면서
괜찮았던 사이가
급속도로 안 좋아 지셨다.
당연하다.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서
부부가 일까지 같이 한다?
이건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제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 할지라도
하루종일 함께 있다보면
부침이 있을텐데
하물며
엄마, 아빠 두분은
각자 성격도 강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래, 너무 고생하시면서
서로에게 쌓인 것이 많아서
그러시는 거니까,
나는 그냥 부모님이 티격태격해도
그런가보다 하자.
나까지 상처를 후벼팔 필요가 없잖아, 그치?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저께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놀러오라는,
하룻밤 자고 가면 더 좋겠다는.
나와 쁘나, 남편은
각각 협상에 들어갔다.
쁘나와의 협상에서는
키즈카페를 약속하고
(쁘나는 엄마, 아빠를 무서워한다.
항상 싸우시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지금껏 내가 얼마나
시댁에 잘했는지를 어필하면서
딱 하룻밤이다, 하룻밤만 자고오자
약간의 성질도 내면서(;;)
설득했다.
토요일 오후에 엄마집에 도착해
근처 유명한 수국밭이 있다고 해서
구경하고 오는데
불안불안.
저녁에는
엄마가 준비하신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본인은 잘 안 드시면서
우리 입에 음식이 끊임없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신다.
나는 엄마의 음식을
최대한 열심히 먹었다.
쁘나와 남편은 편식이 심해
살살 눈치를 보면서
조금만 먹고
슬며시 자리를 떴다.
나는 두 사람 몫까지
합쳐서
열심히 먹었다.
사단은 새벽에 나고 말았다.
밤 11시쯤 잠에 들었는데
새벽 1시쯤에 속이 불편해서 깬 것이다.
그런데 속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울렁울렁거리면서
토할것 같은 느낌이었다.
설마
지금껏 체해서 토한 적은
20살이 넘어서부터는
거의 없을 정도로
내 소화력은 대단했다.
(과식을 해도 문제 없던 내 위가
갑자기 이상을 일으켰다.)
그런데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마당 우물가로 가서
먹은 것을 다 토하고 말았다.
엄마가 정성껏 해주신
유기농 영양만점의 음식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엄청나게 아프기도 하고
(후에 보니 눈 주위 혈관이
미세하게 다 터져있었다.)
위가 꿀럭꿀럭하면서
쥐어짜는데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다 쏟아내고 나자
속이 편해졌다.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무리하고 있었나보다.
어렵다, 어려워.
부모 자식 관계도 이렇게 쉽지가 않다.
새벽에 체해서
토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아시면
엄청나게 걱정할 걸 알기에
아빠와 나, 남편, 쁘나 모두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빠는 새벽까지 TV를 보시다가
내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에 나오셔서
내 우물가 사건을 보시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밤 사이 아무일도 없었단 듯
우리는 엄마가 차려준
엄청난 아침을 먹고
텃밭에 싱싱한 야채들을 잔뜩 받아서
양손가득 채소와 과일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쁘나 키즈카페도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자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쏟아졌다.
스텝 바이 스텝
너무 무리하지 말자.
그래도 엄마, 아빠와 싸우지 않고
돌아온 것
정말 잘했어,
나 스스로 내가 대견했다.
(진짜 대견할 일도 많다.)
나 자신을 매우매우 칭찬해주었다.
(아니야, 토까지 할 정도였다고!!)
다음번은 조금만 부담감을 놓고,
좀더 편안하게 지내고 오자 다짐하면서
나를 격려했다.
사랑해도 관계는 이리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