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데였을 때

by 서진

어제의 불쾌함이 오늘까지 이어진다. 20분쯤 거리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탔을 때였다. 미리 준비해 두지 못한 탓에, 버스를 타고 나서야 카드단말기 바로 옆 기둥에 기대어 카드지갑을 찾으려고 가방을 뒤적이고 있는데 버스가 갑자기 크게 흔들린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등을 그야말로 쥐어뜯을 듯 꽉 잡았다. 순간 너무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내 등을 그렇게 잡은 아주머니는 홀로 넘어지지 않음에 안도하고 자기 자리를 유유히 찾아가신다.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솟아오른다. 단순히 놀라서 잡았다기에 너무 사람의 등을 쥐어뜯듯 움켜쥐었는데 어째서 사과 한마디 없으신 걸까. 미안한 기색조차 없는 걸까.

나는 자리에 앉아서도 심경이 복잡해진다. 화가 나지만 그 순간 누구라도 옆에 있는 무엇인가 잡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라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 움켜쥔 등에서 아직도 그분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다. 한 자리 건너 앞에 앉은 아주머니의 뒤통수를 나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그 아주머니는 얼굴을 서서히 돌려 내 얼굴을 그야말로 빤히 쳐다보신다. 그 눈빛은 내가 너를 좀 잡았는데 그게 뭐가 문제니라고 묻는 듯한 아주 당당하고, 거기에 더해 나의 얼굴과 표정을 관찰하듯 훑어보는 뻔뻔한 눈동자다. 나는 등을 움켜잡혔을 때보다 더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대중교통이나 길에서 부딪치는 군중들로 인해 소모적인 짜증이나 불쾌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에 살면서(지방 도시인 탓에 서울 같지는 않지만) 사람들 간의 적정거리가 항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악의 없는 사람들이 내 공간을 불쑥불쑥 침입해 오시는 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매일 데일리 룩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들고 다니는데 그 삼각대를 꺼내서 사진을 찍으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본다. 대부분 그러다가 눈길을 거두고 내가 같이 눈을 마주치면 멋쩍어하면서 시선을 돌린다. 어느 날 집과 가까운 하천 굴다리 밑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1m쯤 떨어진 벤치에 앉아 계신 어떤 어르신은 정말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듯 시선을 단 한 번도 돌리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황당해서 오기로 그 어르신을 같이 쳐다봤는데 그 시선 또한 피하지 않기에 참다 참다

"저 사진 찍는 거예요. 그만 보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어르신은 그야말로 해맑게 웃으시며

"뭐라고 잘 안 들려"라고 하셨다. 그 순진무구한 대답에 나는 그냥 대꾸하려던 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게 무례하다는 자각이 없는 어른들을 내가 가르치려 들 수는 없었고 그런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지겨웠다.

그냥 모른 체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일로 잊기 위해서 애썼다. 그리고 일을 쉬면서 마음이 여유로울 때는 그런 일들이 크게 마음의 잔상으로 남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쉬는 날임에도 하루종이 울려대는 업무전화를 받다가 버스에서 그 아주머니의 노골적인 시선과 원하지 않은 스킨십을 경험하자 내 영역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입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단숨에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고서 또 마음의 여유란 게 단박에 없어진 나를 느낀다. 일 자체의 힘듬보다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와 조율, 반복해서 서로가 납득할 때까지 얘기하기 이런 일들에 유독 취약한 나를 깨닫고 거기 에너지를 다 소진한 탓에 길에서 오가는 사람에게도 여유로운 마음을 잃어버린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한다.


얼마 전에 버스를 탔을 때 어떤 청년이 만원 버스에서 흔들린다고 자기를 잡은 어르신이 사과를 안 한다며 내내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것을 목도했었다. 그 청년은 거의 10코스 정도를 그 어르신과 말싸움을 했고 보다 못한 주변 어른들이 청년을 너무한다고 나무라고 나 또한 속으로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저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청년의 되바라짐에 속으로 혀를 끌끌 찼었다.


지금의 나의 마음이 그 청년과 다를 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이름 모를 아주머니를 향한 나의 적개심은 마음에 아직도 남아있고 오은영 선생님이 말한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주는 자극을 흘려보내라"

는 말을 곱씹어보지만 화상에 덴 것처럼 화끈해진 마음은 아직도 욱신욱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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