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는 것만 썼었다. 아니 쓸 수 있는 것만 쓴다고 생각했다. 쓸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너무 많았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옮겨 적고 나면 더 이상 쓸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것이 정직함이라고 믿었다. 내가 아는 이야기만 쓸 것.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논하지 말 것.
나이가 들면서 아는 것이 많아지면 쓸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각에 가까웠고 그러자 더 쓸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정말 나에 대한 사소한 것들만을 기록했다.
사소한 것들이 모두 쓸모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것들의 중요함을 얘기하며 “소확행”이라는 말도 유행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들이 유행을 하면 이상하게 그 반대의 것은 또 소홀히 취급된다.
사소한 기쁨을 누리는데 집중하다 보니 큰일들도 사소한 일들처럼 지나간다.
일의 경중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 걸까
개인이 판단한 “나에게 중요한 어떤 것”만이 세상에도 똑같이 중요한 것일까
사소하게 취급되어선 안 될 일들이 사소하게 취급되는 것을 보면서 사소함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조명받았다가 빠르게 퇴색되는 과정을 지켜본 것 같아서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무겁게 다가온다.
행복과 환희와 슬픔이라는 거창하고 큰 단어 앞에 슬쩍 붙여주면
단어가 가진 무거움은 덜어지고 부담스럽지 않게 자주 쓸 수 있는 완충제가 되어주던 사소함은 깊고 진하고 무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을 어느새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 단어들은 사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던 단어들을 자꾸 우리 입맛에 맞게 길들인다.
그 과정에서 기피하게 된 단어들과 남용하게 된 단어들은 모두 각각의 역할이 있었다.
사소한 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자 거창한 일들에 대해서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애매하게 느끼는 슬픔과 화 기쁨은 모두 사소함의 카테고리에 집어넣었다. 감정의 진폭이 작은 각도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기를 바라는 소망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느끼고 깊게 추락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느새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영화나 드라마 책도 자주 보지 않게 되었고 고만고만한 감정 안에서 별 탈 없이 지나가는 하루에 만족하게 되었지만...
문득 내가 기록한 사소한 것들을 다시 들춰보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적고 싶고 기록해 두고 싶었던 것은 정말로 이게 다일까 내가 아는 고만고만한 것들을 계속 있는 그대로 적는다고 해서 내 세계는 확장될 수 있을까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 일에서도 치열할 수 없다면 나의 한계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큰일들은 모두 남들에게 맡겨두고 사소한 일들만이 나의 몫이라고 여기고 그래야만 괴롭지 않은 현실의 자기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소하게 즐기던 일들 중 많은 것은 안 하기로 했다. 인생 뭐 있어하며 매번 시켜먹었던 배달 음식을 관두고 유튜브가 나에게 들이미는 콘텐츠를 이리저리 떠밀리듯 유영하는 시간도 줄이고 의식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생각한다. 열심히 거창하게 산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진 않는 세상이지만 큰 단어에 기대어 하루에 한 번 큰 포부도 품어본다. 큰 실망이 오더라도 큰 기대를 품어보리라. 거창한 다짐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