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덜거덕 덜거덕 출근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온이 제법 싸늘해서 코트를 입어야지 하고 일어나자마자 생각한다. 그런데 이너는 그렇게 두껍게 입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싸늘한 날씨인데 요즘 우리나라의 날씨는 어제와 오늘이 다른 걸 망각하고 이제껏 꽤 따뜻했으니 코트를 입었으니 안은 가벼워도 괜찮을 거라는 어림짐작이다.
역시 짐작을 틀렸고 지하철역까지 잠깐 바람을 맞았다고 지하철 역 내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코가 훌쩍이기 시작한다. 좌석에 앉아 있으니 간질간질하다가 결국 마스크 안에서 콧물이 흐른다. 망신스럽지만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망신이다. 어디 보자 아직 내리려면 멀었는데 콧물을 빨리 닦고 싶어서 앉아 있는 내내 좌불안석이다. 3호선을 타면 평소에는 차창을 바라보거나 지하철 칸과 칸을 이어주는 통로에 서서 있는다. 어떤 때는 높은 곳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게 좋고 어떤 때는 무섭다. 이 지하철이 선로를 이탈한다면 꼼짝없이 추락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상상만으로 싫어져서 고개를 젓는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갈려면 지상철인 3호선을 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동네 바로 3분 거리에 3호선 역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지하철이 개찰구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는 때이다. 저 멀리 산도 보이고 하늘도 조금 보인다. 그 사이를 유유히 지하철이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아주 정겹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나에게 다가오는 반가운 친구 같다.
주말 출근은 싫지만 좋은 점도 있다. 지하철 안에 사람이 별로 없고 주말에 할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주말에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주말에 놀러 나온 사람들을 구경할 수는 있다. 나는 이런 점들이 마음에 든다.
내가 주말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관광지나 도심에 가는 것은 싫다 그러나 일하러 나와서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좋다. 나는 어차피 일을 하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것이다. 예전에 영화관이 같은 층에 있는 매장에서 근무했을 때는 사람들이 손마다 커다란 팝콘 상자와 콜라를 들고 있었고 고소한 버터 팝콘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그들은 영화 표를 미리 끊어놓고 그 시간을 유유히 기다리면서 쇼핑을 즐기는 것이다. 지금은 그보다 덜 번잡스러운 곳에서 일하지만 역시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다. 데이트하러 나온 연인들, 외식하러 나온 가족들, 다이소에서 산 크리스마스 산타 인형을 손에 하나씩 든 여고생들 가끔 그들을 바라보며 상상한다. 저녁은 무엇을 먹었을까. 저 쇼핑백 안에 든 것들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허리와 어깨와 목을 곧게 세우려고 노력하면서 일하는 시간을 보낸다. 사람이 일정한 리듬으로 많이 매장에 찾아오면 신명이 나지만 너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몰리면 진이 빠지고 너무 찾아오지 않으면 시무룩해진다. 판매는 그런 것이다. 손님이 적당히 활력을 주는 리듬으로 찾아오면 좋겠지만 너무 많이 오거나 너무 오지 않는다. 그러면 예전에는 하루 종일 우울하거나 하루 종일 기력이 달렸다.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핑퐁처럼 릴레이처럼 손님들이 찾아오면 마음이 즐겁다.
포스를 누를 때의 손가락도 가볍다.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좀 많았다. 나는 괜한 생각들을 하고 다음 주에 무엇을 가장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행여 놓칠세라 자꾸 곱씹어 봤다.
그리고 30분에 한 번씩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오늘은 정말로 많이 고민하고 매일 들리는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나도 나이가 드니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긴 하지만 따뜻한 커피도 당긴다. 예전에는 무조건 얼죽아였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제는 호기롭게 외치지는 못한다.
흘러가는 생각들을 하고 싸온 점심 김밥을 먹고 이러저러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내일은 좀 더 따뜻하게 입고 출근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오늘은 일기를 쓰지 말아야지 했다가 그냥 뭐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화면을 켜고 백지에 키보드를 치기 시작하니 뭐라도 써졌다. 그런 날은 만족스럽다.
11월 27일의 내가 또 과거로 작게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