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히어로를 보면 주인공 기무라 타쿠야는 내도록 같은 옷을 입고 나온다.(고등학교 시절 일드를 좋아하던 반 친구가 야자 시간에 틀어줬던 드라마였다)
'갈색 패딩 점퍼'
지금은 꽤 재미있게 본 그 드라마에서 기억나는 내용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그 갈색 패딩 점퍼를 입은 기무라 타쿠야의 모습만 뇌리에 박혀있다.
어떤 작품에서 특히 옷차림이 기억되는 경우는 의상이 화려하거나 멋있어서 일 때도 있지만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존재감 때문일 때도 있다.
그들은 옷을 잘 입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같은 옷을 계속 입는 것도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더킬링의 형사 여주인공 새라 린든은 무심하게 넘긴 포니 테일을 하고 지극히 평이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그런 캐릭터의 일관된 옷차림에서 우직함과 아웃사이더적인 성향, 아주 지독한 고집과 고립이 느껴진다. (그런데 왜 형사나 탐정 캐릭터가 그런 경우가 많을까) 한 가지 옷만 입는다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어떤 사람의 옷차림 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면 편견이 되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상은 그 캐릭터의 본질을 보여주는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스티브 잡스의 잡스 룩처럼 그들에게 그 옷은 일종의 작업복 같다.
옷에 대해 심플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통해서도 어떤 사람은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옷을 잘 입는 사람에게도 흥미가 있지만 옷을 기능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도 다른 의미의 관심이 간다. 결국 미니멀룩을 말하는 게 아니야 할 수도 있지만 미니멀룩을 추구하는 것과 간결하게 입는 것, 매일 같은 옷을 고민 없이 입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옷을 고민 없이 매일 비슷하게 입는 사람에서 이리저리 다른 스타일을 입어보는 사람으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내게 여유가 없고 이번 겨울을 어떤 한 가지 차림새로 보내야 한다면 어떤 룩을 선택했을까. 그런 마음으로 쇼핑을 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내일 다른 옷을 입을 것이다.
오늘만 해도 당근에 저장해둔 키워드에 어그가 뜨길래 바로 들어가니 딱 내 사이즈의 정품 어그 슬리퍼가 새 걸로 3분의 1 가격으로 나와있어 바로 제가 할게요! 를 외쳤다. (인기 제품은 아직 있나요? 가 아니라 제가 할게요를 외쳐야 한다) 올해의 마지막 쇼핑이라고 외치면서 내 손에 들어온 어그 슬리퍼를 신어보는데 너무 따스하고 포근했다.
그래서 결론은, 소비의 즐거움과, 옷을 좋아하지만 어느 선에서는 더 이상 물건을 사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환경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을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고 요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