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이 특별해서 좋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난 특별하고 싶어서 흥하는 모든 것이 싫어 식의 청개구리 식 감정의 발로는 아니었다. 나의 성미가 무엇인가 흥한다고 해서 나도 해볼까라는 호기심이 별로 안 드는 성격이라서 그랬다. 특히 어떤 물건이 흥한다고 그것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흥하는 것들을 전반적으로 알고는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라 흘러가는 각종 정보들을 항상 눈과 귀로 훑었다. 얼핏 듣고 얼핏 아는 것들이 많은 어디서 들어본 건 많아가지고의 그이가 바로 나였다.
어릴 때부터 문예 잡지도 보고, 씨네 21, 키노 같은 영화 잡지도 보고 패션 잡지도 달마다 휘리릭 넘겨보고(아이러니하게도 패션 잡지의 칼럼 부분을 제일 좋아했다) 힙합을 좋아하면 힙합 플레이야 같은 힙합 커뮤니티를 눈팅하며 래퍼 서열 나누기 같은 글을 지켜보며 내가 좋아하는 래퍼가 순위가 낮게 평가되면 열을 냈고 현대 미술에 관심이 생겨 현대 미술 작가에 대한 책들을 탐독하기도 했다. 페이퍼라는 문화잡지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었다. 그리고 그때는 네이버 블로그나 이글루스 프레첼의 덕후라고 불리는 어떤 문화에 정통한 이들의 자기 견해를 꽉 채워 담은 블로그 글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글로 뭐든지 알게 되는 게 지금 영상으로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익히게 했던 것 같다.
타인이 편집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요약해주는 영상에서의 정보가 아니라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의 커뮤니티와 전문가와 아마추어 리뷰어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논지를 읽는 것이 어떤 문화에 대한 내 견해를 적립하고 오래 붙잡아두는 기억을 만드는데 훨씬 유용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깊이 파고들어 열광하는 것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나 사물이 없어지니 그 분야 전반에 대한 얕은 관심들도 많이 사그라들어 그런 잡 지식들을 익히는데 들이는 시간도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재능을 가진 이들을 쫓고 그들을 탐구하다 보면 나에게도 그들이 가진 재능이 조금 전이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재능이 없음을 직감하고 그럼에도 그들을 알아보는 눈이라는 재능은 가졌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느꼈다. 내 취향이 무시되는 것에 유독 발끈했던 건 그런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특별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내심 마음속으로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특별한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차마 밖으로 꺼내 놓지는 못한 마음이다. 어릴 때 운영하는 독서 감상 블로그의 이름도 “탐미주의자”였을 정도니까.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 예쁘고 잘난 것을 넘어서 특별한 이들에 대한 동경은 한편으론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한 심드렁함으로 이어져 현실 세계의 많은 것들이 재미없게 느껴졌다.
내 눈은 내 눈앞의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항상 내가 꿈꾸던 것들을 쫓느라 당장 눈앞의 존재하는 사람과 풍경들을 봐도 보고 있는 것이 아닐 때 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토록 세상의 무엇이든 알고자 하면서 주변 현실의 내 세계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던 내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한편으론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도 든다. 게걸스럽게 섭취했던 정보들을 다 소화시키진 못했지만 지금처럼 유튜브나 짧은 쇼트 영상이 발달하기 전 인쇄매체가 흥하던 시기에 문화적 관심이 지대했음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단순히 그때의 나는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에 대한 도파민 중독에 빠져있던 걸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현실과 유리된 비현실적인 것들에 탐독하던 시기를 거치고 나서 현실을 살아가고자 했을 때 그때 알게 된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보편적인 것들에 감응한다. 날씨가 더워져서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아이스 음료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볼 때 날씨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하루 만에 바뀐 추운 날씨에 어제는 분명 얇았던 사람들의 옷차림이 하루 만에 두꺼워진 것을 볼 때(패딩점퍼를 입고 어그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 그런 이름 모르는 이들이 정겹고 귀엽게 느껴진다.
다 같이 월드컵을 응원하며 선수들의 투혼에 자기 일처럼 눈물 흘리며 나도 내 삶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동지애를 느낀다.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사실은 그냥 특별한 재능을 가진 보통의 인간일 뿐
“신”적인 존재는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 대한 열광은 관두었다. 환상이 사라지고 인간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가 사라질 줄 알았지만 그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분투가 전부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에겐 분명 환상을 깨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인간에 대한 너무 큰 환상을 가졌을 테고 그런 감정은 항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출발점을 삼는데 큰 방해가 되며 인간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입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안에 나와 같은 보편성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보편성의 눈으로 세상을 봤을 때 보편적이고 당연한 많은 것들이 정답게 다가왔다. 일터에서 이제 온전히 두 다리를 자신의 힘으로 가눌 수 있게 된 아가가 부모와 살짝 떨어져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들이 어느 순간부터 왜 이렇게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인가 하는 느낌. 그 평범한 모습이 삶의 기적처럼 느껴졌다